매일신문

세풍-현실을 외면하고서야…

김치 파동은 현실을 외면한 국민 모두의 합작품이다. 발단은 중국산 수입 김치의 기생충 알이다. 식품 당국의 발표가 있자 집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김치 먹기를 주저했고 음식점마다 수입 김치를 쓰지 않는다는 간판을 내걸었다. 나라 전체가 중국산 김치를 불량품으로 낙인 찍었다.

중국이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한국에 수출한 김치는 한국 업자들이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하다 한국산 수입 김치에서도 기생충 알이 나왔다며 수입을 통제했다. 기생충 알은 우리 김치에서도 나왔다. 남의 것을 얕잡아 본 오만과 호들갑이 부메랑이 돼 자기 발등을 찍었다. 김치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김치를 멀리하고 김치 공장 종업원은 일자리가 없어질까 전전긍긍한다.

중국산 먹을거리가 우리 식탁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제조 식품도 마찬가지다. 잘 만들라는 채찍이 치명타로 변하면 자칫 먹는 사람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빤한 현실에 섣부르게 거들먹거리다간 곤경을 피할 수 없다.

최근 '맥아더 동상 철거'에서부터 '6'25는 통일 전쟁이며 미국의 참전이 민족의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과 이후 벌어진 수사지휘권 파동에서도 현실과의 거리가 느껴진다. 다른 주장과 마찬가지로 두 주장 모두 있을 수 있다. 역사 앞에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주장이다.

그러나 나라 밖 교역이 아니고선 살림을 꾸릴 방도가 없는 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6'25를 통일 전쟁으로 보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 이산 가족을 포함, 국민 개개인에게서 전쟁의 아픈 기억과 상처가 잊히고서야 가능한 해석이다. 현실을 부정하고서는 학문의 자유도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지구촌 곳곳에는 피와 땀을 흘리며 목숨 걸고 싸워 준 사람들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지 않은가. 행여 그런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누가 목숨 걸고 뛰어와 줄까. 그래 봤자 얼마 안 가 왜 왔느냐고 할 텐데 말이다.

인권 보호를 내세운 수사지휘권 발동은 법무부장관의 정당한 권리 행사다. 그러나 장관의 권리 행사의 의도가 국민 상당수로부터 의심을 받는다면 이는 과연 정당할까. 나의 정당성만 주장하며 반대 논리를 무시함은 현실 외면과 다르지 않다.

최근 도청 사건 수사로 전직 정보 기관 수장들이 구속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잘못된 일이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청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됐지만 도청 사건은 더 이상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오늘의 현실이다. 아직 내 편이 건재한다고, 내가 몰랐다고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면 국민은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내년이면 다시 지방 선거다. 지역마다 선거 열기가 일고 있다. 대구 시장을 놓고도 설왕설래가 많다. 대구의 표심을 장악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한나라당은 점찍을 후보 찾기에 분주하다. 전문 경영인을 찾기도 하고 누가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해 줄까를 따지기도 한다. 표면으로는 추락한 대구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대구로부터 몰표를 얻어 온 한나라당은 이제 대구의 현실을 고민해야 한다.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구의 고집과 선택이 가져 올 대구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당장의 표도 중요하지만 대구의 미래는 한나라당의 오늘과 미래보다 더 중요하다.

대구 경제는 대구 혼자 힘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곳 저곳과 서로 돕고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대구 살림이 하루아침에 윤기를 찾는다면 이는 허세요, 거짓말이다. 정당의 후보야 대구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오래도록 대구에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야 하는 게 바로 대구 사람의 현실이다.

徐泳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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