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李太洙 칼럼-이 '외톨이 청소년'들을 어쩌나

'고독 불안 증오 파멸' 수렁 / 관심'배려'제도적 장치 절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無人島)에 떨어진 한 택배원의 처절한 생존 싸움을 담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일깨워 줬다. 주인공은 택배 물품인 배구공에 가상인물의 얼굴을 그려 넣고, 그것에 자신의 고독을 하소연하기까지 했다.

'잡을 테면 잡아봐'는 스무 살짜리 사기범의 지독한 외로움을 부각시킨 영화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무실로 걸려온 범인의 전화를 받은 수사관은 '외로워서, 전화할 데가 없어서, 걸었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범인은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황급히 수화기를 놓아 버렸다.

먼 데 볼 것도 없이, 주위에 눈을 돌려보자. 영화 '캐스트 어웨이'나 '잡을 테면 잡아봐'를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넘쳐난다. 자의든 타의든 외톨이가 된 청소년들이 '외로움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증오를 낳으며, 증오는 파멸을 부른다'는, 바로 그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일찍이 공자(孔子)는 '소인이 한가로이 홀로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을 하기 십상(小人閑居爲不善)'이라 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인식하고 아는 것과 현실적인 문제는 갈수록 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고교생 가운데 친구는 물론 가족과도 담을 쌓고 방에만 박혀 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런 고교생이 무려 4만3천여 명에 이른다. 이 중 5천600여 명은 학업까지 포기한 채, 집에 숨어사는 것으로 추산된다니 충격적이다. 집단따돌림(왕따)'자폐증''대인기피증 등과 함께 이 현상은 우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아픔'이다.

이들 가운데는 심지어 홀로 식사하면서 인터넷에만 빠지고 TV를 보면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핵가족화 시대'에 형제자매 없이 자라나는 데다 부모의 과잉보호, 학력지상주의에 따른 친구 사귈 시간 부재,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폭넓은 보급 등이 주요 원인이겠지만, 진정 안 될 일이다. 이 같은 '아픔'은 분명 가정'학교'사회 등 사회문화적 산물이다. 자폐증'대인기피증'왕따 등과 다르다는 점에서도 더욱 우려된다.

얼마 전, 경찰청이 공개한 자살 청소년들의 유서는 가슴 아프게 했다. '심심하면 시비 걸고 때리고 욕하고, 죽으면 이런 고통은 없겠지…춥다.' '내가 귀신이 되면 너희를 가만두지 않겠다.' '친구 하나 없고, 난 바보인가 보다. 멸시받는 것이 내 운명인가 보다.' '모든 것이 무섭게 보인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

몇 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으나, 이들 유서 내용엔 사회와 친구에 대한 원망과 분노, 고독과 절망 등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정녕 가정과 학교, 우리 사회는 이제부터라도 새로워져야 한다. 청소년들의 자폐증과 대인기피증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힘 모아 함께 찾고, '왕따'와 '은둔형 외톨이'가 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과 마음'을 펼쳐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보호받으면서 공부하고 놀 수 있는 '학교 밖 공간'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적잖은 청소년들이 빈집을 지키는 외톨이가 되거나 또래들과 쏘다니는 게 고작일 정도로 소외돼 있다. 안전하고 건전하게 자랄 권리를 잃고, 가정환경에 따르는 '교육 기회의 상대적 박탈감'에서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한 청소년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질 건 뻔한 일이다. 거리를 방황하다가 사회악에 물드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그렇게 성장한 외톨이는 사회성과 벽을 쌓게 될 것도 한가지다. 결국 이들은 '가난의 대물림'을 하게 되는가 하면, 신분 상승 기회로부터도 멀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사회의 밝은 미래와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이들에 대한 폭넓고 깊은 관심과 배려, 제도적 장치는 '발등의 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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