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성로의 밤] 넘실대는 사람들…삶의 애환이 출렁인다

동성로에는 패션과 젊음이 있다. 만남과 추억도 있다. 중앙파출소에서 대구백화점, 엑슨밀라노, 대우빌딩을 아우르는 약 1km의 번화 거리로 유행과 상권이 분수령을 이루는 '대구의 1번지'다. 로드샵을 비롯한 상가만도 7천여 곳이다.

오후 3시쯤. 동성로는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처럼 일제히 활기를 띤다. 막강 소비군단이자 도심 문화를 선도하는 젊은이들이 민감한 더듬이를 세워 몰려든다. 액세서리와 잡화점, 보세 화장품 가게를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아직 트이지 않은 호객꾼 목청도 높아간다. 새롭게 출시된 브랜드는 단연 화젯거리다. 휴대전화를 통해 친구들에게 바로 연락이 가고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영상으로 전송된다. 급한 이들은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유행은 이렇게 입과 영상을 통해 번져간다.

한참 후….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불빛들이 군락을 이루면, 한 두 평 남짓 거리 한복판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노점상이 하나 둘씩 자리 잡는다.

순한 맛과 매운 맛의 닭 꼬지에서 양념어묵, 과일주스, 호떡, 땅콩빵, 호두과자, 패션 양말과 장갑, 액세서리, 모자, 저가의 귀금속까지 난전을 방불케 한다. 간간히 '추억의 뽑기'도 보인다.

한 상인은 "며칠 새엔 외국인 노점상마저 등장해 갈수록 힘이 든다"고 푸념했다. 확실히 로드 샵의 화려한 조명 빛에 비하면 두 세 개로 밝힌 60촉 노점상 전구가 초라하다. 가게 앞을 막는다고 "저리 비켜라"라는 괄시에 무거운 리어카를 옮길 수밖에 없다. 삶의 각축장이다.

"지금은 오뎅 리어카가 제일 잘 돼요"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넋두리를 내뱉는다. 그래도 노점상엔 추운 겨울, 몸을 부대끼며 체온을 나누는 정이 있다. 김이 오르는 어묵 리어카엔 누가 데려 갈세라 허리를 꼭 껴안은 커플과 학생, 퇴근길 직장인들이 허기를 때우고 뜨거운 국물로 추위를 쫓는다.

어둠이 짙어진 밤 10시. 철시하는 노점상의 전구를 쫓아 사람들도 귀가를 서두른다. 열정과 비틀거림으로 오버랩되는 군상들의 긴 그림자들만 동성로에 드리워진다. 이들은 노래방 혹은 2차, 3차의 은근한 부추김에 이끌려 새벽까지 어지러운 발자국을 남긴다.

시인 김기만은 '동성로에 가고 싶다/긴 코트 자락으로 꽃집에 들러/비 내리는 가을 오후에/(중략)/다시, 나는 나서리라/아직도 동성로를 적시는 저 가을비 속으로'라고 읊었다. 시인의 노래처럼 무리에 섞여 살아야 하는 우리는 이렇듯 동성로에서 또 하루를 이어간다. (12월 8일자 라이프매일 www.lifemaeil.com)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박순국 편집위원 toky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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