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인사이드] 악명높은 수비수, 위대한 수비수

골을 넣기 위해 혈안이 된 상대 공격수들에 맞서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용납치 않아야 하는 수비수들은 쉴 새 없이 상대 공격이 이어지는 90분 동안 터질 듯한 긴장으로 방어에 나서지만 빛을 발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위대한 공격수들이 많은 데 비해 위대한 수비수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우승팀 이탈리아의 수비수 클라우디오 젠틸레는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를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방어했다. 젠틸레는 마라도나에 무자비한 태클을 자주 걸었지만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고 마라도나는 젠틸레의 방어에 막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젠틸레는 이탈리아의 우승에 한 몫 했으나 그의 수비는 악명을 떨쳤다.

한 해 전인 1981년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바이에른 레버쿠젠의 수비수 유르겐 겔스돌프는 프랑크푸르트의 스트라이커 차범근에게 뒤에서 태클을 가해 선수 생활이 위태로울 정도의 악성 태클을 가했다. 차범근은 다행히 나중에 부상에서 회복, 멋진 활약을 이어갔지만 그 태클로 인해 겔스돌프는 한동안 팬들의 비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악명높은 수비수와 위대한 수비수는 어떻게 다른가. 축구의 속성상 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피할 수 없겠지만 상대에게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히지 않고 공격을 저지할 수 있는 플레이가 좋은 수비로 평가받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한 이탈리아의 1990년대 스타 프랑코 바레시, 파울로 말디니, 1970년대 토탈 사커를 추구한 네덜란드의 루드 크롤, 1966년 월드컵 우승팀 잉글랜드의 주장 보비 무어, 1950년대 후반과 초반 브라질 대표팀의 드잘마 산토스 등은 축구사에 위대한 수비수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홍명보 역시 상대 패스길을 예측하고 길목을 차단하는 뛰어난 수비로 각광받았으며 2006 독일월드컵에 나서는 노장 최진철은 K리그에서 때론 거친 플레이로 상대 팀의 원성을 듣기도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투혼 어린 플레이로 한국의 수비벽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독일월드컵에 나서는 수비수들 중 잉글랜드의 존 테리는 자국 내에서 선수들과 팬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수비수이며 브라질의 루시우,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네스타, 스페인의 카를레스 푸욜 등은 뛰어난 수비수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대회가 거듭될수록 선수를 보호하고 플레이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악성 반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오고 있는데 이때문에 수비수들이 악명을 떨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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