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잦은 가을비에 '農心' 녹아내린다

벼 낱알에 싹 나고, 포도는 물러터지고…

▲ 계속된 비로 벼와 과수농가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5일 오후 대구시 북구 검단동 들판에서 수확을 앞둔 벼가 빗물에 쓰러져 침수되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흰뺨검둥오리가 떼를 지어 날아들어 벼이삭을 쪼아먹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계속된 비로 벼와 과수농가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5일 오후 대구시 북구 검단동 들판에서 수확을 앞둔 벼가 빗물에 쓰러져 침수되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흰뺨검둥오리가 떼를 지어 날아들어 벼이삭을 쪼아먹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농작물이 녹아내리고 있다. 낱알이 여물어야 할 때이지만 지난달 26일부터 11일 동안 그칠 줄 모르고 내린 비 때문에 예년의 79%에 불과할 만큼 일조량이 절대 부족해(대구기상대 올 여름 3개월 일조시간 및 예년 평균치 비교 자료), 벼·과일·채소는 녹아내리고 각종 병해충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황이 너무 좋아 은근히 풍년가를 기대했던 농민들은 수확량 감소, 품질 저하, 수확시기 지연 등 3중고를 걱정하는 한숨만 쉬고 있다.

◆낱알 안 여물고 병해충만

5일 취재진이 경북지역 들녘을 둘러본 결과 벼 낱알은 여물지 않고 엉뚱하게 싹이 나면서(수발아현상) 결실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예년 같으면 벼베기 날짜를 잡아야 할 때인데도 추수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형편. 운광·오대벼(조생종), 고품벼(중만생종) 등 주로 관청이 권장한 품종들에서 수발아현상이 심각하며, 10~30% 수확량 감소가 우려된다.

벼 잎집무늬마름병(문고병), 이삭 도열병 등 병해충도 극성이었다.

특히 마늘·양파, 참외·수박, 딸기를 수확한 뒤 후작으로 모내기한 영천, 성주, 고령에는 혹명나방이 크게 번지고 있다. 늦게 모내기를 하는 바람에 잎색이 녹색을 띠어 혹명나방의 표적이 된데다 비로 인해 제때 방제작업을 하지 못한 때문이다.

또 무농약·저농약 농가의 피해가 커 친환경 벼 재배농가인 박재창(48·영주시 안정면) 씨는 "잎짚무늬마름병으로 벼가 여물기도 전에 떨어지고 있다. 자칫 논을 갈아엎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과일 출하량 줄고 채소농사 망쳐

과일 역시 밤에는 추위를 느낄 정도의 기온 저하까지 덮쳐 알 성장이 멈추면서 출하량이 확 줄었다.

안동시농산물도매시장의 경우 지난해 이맘때는 하루 평균 8천∼9천 상자씩의 사과가 쏟아졌으나 요즘에는 4천∼5천 상자로 반감됐다.

김천 대덕면에서 사과농사 2만 6천여㎡를 짓는 류준혁(48) 씨는 "10일 이상 계속된 비로 예년보다 출하량이 30~40% 줄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상주에서는 전국 최고 품질로 평가받는 모동·모서 등 중화지역 고랭지 포도와 경산의 노지 포도에서도 알이 물러 터지는 '열과 현상'이 예년보다 10% 이상 많이 나타났으며, 심지어 시설 하우스포도에서도 열과 피해가 생겼다.

채소 농사도 망치긴 마찬가지다. 무와 배추 파종시기를 1주일 이상 놓쳐버린 농민들은 손을 놓은 채 흐린 하늘만 바라보고 있고 탄저병, 겹무늬썩음병, 뿌리혹병 등에 가슴을 태우고 있다.

이번 가을비가 시작되기 전 파종을 마무리한 노지 배추밭 농민들도 습해로 싹이 녹아버려 낭패스럽긴 마찬가지. 김정호(74·안동 송천동) 씨는 "비로 이랑에 물이 고이면서 겨우 돋아난 배추 어린 싹이 노랗게 녹아버렸다."고 말했다.

참깨 농민들도 비로 수확해 둔 참깨를 털지 못하면서 밭에서 파랗게 싹이 터 농사를 망쳤다.

◆과일, 채소값 금값

이 같은 수확 부진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출하 초기에 상품 1상자당 8만 8천 원선이었던 홍로(조생종 사과)의 경락가는 5일 오후 9만 7천 원으로까지 뛰어올랐다.

환타지아, 유명(만생종 복숭아) 판매가격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난해에 비해 20% 정도 낮은 10kg 한 상자당 평균 1만 3천 원 내외에서 최근에는 3만 원까지로 급등했다.

안동농협 윤관기(51) 사과경매 담당은 "비가 와서 제때 사과 봉지를 벗겨내지 못해 착색이 시원찮지만 출하량 부족으로 가격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며 "비가 그친다고 해도 추석 대목이 겹치면서 사과 산지가격 강세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소류 가격도 3배 정도 올랐다. 구미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서는 평소 2㎏에 500~600원 하던 대파가 1천600원대로, 열무는 1천800원으로, 상추는 2㎏에 3천~4천 원에서 1만 3천 원으로, 부추는 1㎏에 400~500원에서 1천200원으로 폭등했다.

◆"습해 줄여라" 비상

농작물 습해가 가을 들녘을 덮치자 관공서에는 비상이 걸렸다. 경북도농업기술원은 5일 의성 등 농촌 현지에서 회의를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안동시농업기술센터도 이날 전 직원들이 나서 배수로 작업을 독려했다. 안동시농업기술센터 원예계 김재탁(40) 씨는 "지난달 초에 장마가 끝나고 강한 폭염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풍년을 전망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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