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체험학습] 천년의 숲, 함양 상림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천년의 인공숲'

조선시대 경상도에는 양반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두 지역이 있었다. 한 곳은 지금까지 많이 알려진 안동이며, 다른 한 곳은 전라도와 맞닿아 있는 작은 산골 지역인 함양이다. 한양에서 바라보면 낙동강을 중심으로 왼쪽의 안동과 오른쪽의 함양에서 인재들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남사림의 맥을 이어온 선비의 고장이다.

함양은 백두대간의 기운이 웅장한 산세를 이루며 멈춰선 지리산의 북쪽 자락에 백운산과 괘관산,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높은 산줄기로 둘러싸인 산간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험준한 산능선으로 인해서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오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던 곳이지만,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이 눈부신 풍광을 연출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함양에 들어서면 여느 지역과는 다른 풍경 하나가 눈길을 끄는데, 읍 시가지의 북서쪽 위천변에 길게 펼쳐진 상림 숲이 바로 그것이다.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은 산기슭도 아닌 평지에 길이 1.6㎞, 폭 70~200m 규모로 140여 종 2만여 그루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으로, 시가지 가까운 곳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진귀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 숲은 자연 숲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공사로 탄생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이다.

상림은 신라 말엽 진성여왕 때 천령군 태수(지금의 함양 군수)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857~925)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수백에 불과했을 고을 사람들에게 반경 4㎞나 되는 숲을 조성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을 만든 까닭은 어디에 있었을까? 당시 들판의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던 위천은 매년 여름이면 냇물이 넘쳐 농경지와 가옥이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치원은 치수사업(하천정비)을 벌여 위천의 물길을 들 밖으로 돌리고 둑을 쌓아 홍수를 잠재웠다고 한다. 또한 원래의 물길과 둑 주변 땅에는 많은 나무를 심어 위천 둑을 튼튼하게 보호하는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숲에는 이 지역의 토질과 기후에 적합한 상수리 나무 등 유용한 수종을 골고루 심어 어려울 때 식용이나 약용, 연료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하여 숲이 경제적으로도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이처럼 최치원이 상림에 새긴 백성을 걱정하고 위하는 뜻은 함양 사람들에게 소중한 정신으로 이어져 갔다. 함양은 조선시대 일두 정여창(조선 초기의 성리학자로 동방 5현의 한 사람)에 의해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함양 개평마을이 고향인 정여창이 존경을 받는 것은 학문적 지식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정신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천 정신은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에게까지 이어져 함양 안의에 물레방아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급하여 농경에 이용하게 하였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숲 상림! 함양 사람들에게 상림은 그저 쉬어가는 평범한 숲이 아니다. 한 시대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 어떻게 배움을 실천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커다란 깨달음의 숲이다.

◆ 함양 상림에 대한 Q&A

▷'상림'이란 숲 이름과 인공 숲이 천연기념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숲으로 당시에는 이 숲을 '대관림(大館林)'이라 불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홍수로 둑의 중간이 파괴되어 숲이 갈라져 위쪽은 상림(上林), 아래쪽은 하림(下林)으로 불렀는데, 하림은 그 후 집이 들어서면서 숲은 거의 사라지고 고목 몇 그루만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상림은 인공 숲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잘 관리되어 학술적, 생태적 연구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제154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천연기념물 숲 가운데 유일한 낙엽활엽수림이라는 데 가치가 크다. 이처럼 천년이 지난 지금의 세월까지 숲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함양 사람들이 옛 선인들의 실천 정신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상림의 숲은 생태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잘 보존된 숲은 첫째, 빗물을 흡수 저장하고 빗물의 유출 속도를 조절하여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줄여 준다. 둘째, 나무의 뿌리가 토양을 고정시켜 토사의 유출을 방지하므로 토양 침식을 막아 준다. 셋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여 공기를 정화시킨다. 넷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유지하여 휴양지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이 밖에도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기능, 소음과 먼지를 줄여주는 방음·방진 기능, 환자의 치료 기능, 냉난방에 드는 에너지 절약 기능, 야생 동물에게 먹이와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는 기능 등이 있다. 따라서 숲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원이다.

▷상림 공원에서는 무엇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현재 상림은 숲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따라서 상림 공원에서는 숲을 이루는 각종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으며, 숲 속의 산책로와 1만㎡의 잔디밭, 야외 공연장인 다별당에서는 체육 활동과 문화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또한 함양 척화비와 이은리 석불, 역사인물공원, 물레방아 등을 통해서는 함양의 역사와 정체성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 조성된 상림 동쪽의 생태공원은 연을 비롯한 각종 수생식물의 생태를 체험하는 자연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하면 유익할 것 같다.

◆ 주변에 이런 곳도 있어요!

▷학사루(學士樓, 유형문화재 제90호)

최치원 선생이 함양 태수 재직시 누각에 올라 자주 시를 읊은 곳이어서 학사루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학사루 서쪽에 객사가 있어 지방관리가 정무를 보다가 누각에 올라 시와 글을 쓰며 심신을 달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은 영남학파의 종조인 김종직 선생이 함양 군수로 부임하였을 때, 당시 모사꾼으로 평판이 좋지 않던 유자광의 시판이 학사루에 걸린 것을 철거토록 한 일이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해 연산군 4년(1498)에 김종직이 부관참시의 화를 당한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일두 정여창 고택(중요민속자료 제186호)

조선조 5현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으로 후손들이 중건한 1만㎡의 대지에 12동의 건물이 배치된 영남 지방의 대표적 양반집이다. 솟을대문에 충·효 정려편액 5점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정려패는 효자와 충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패인데, 이것을 무려 다섯 명이나 받은 것은 충효를 실천하는 가문의 전통이 있음을 말해준다. 사랑채는 'ㄱ'자형 구조로 벽에는 문헌세가(文獻世家), 충효절의(忠孝節義) 등의 글귀가 붙어 있다. 남향의 '一'자형 안채는 개방적 구조로 분할되어 집이 밝고 화사하여 양반가의 정갈한 기품이 가득하다.

▷남계서원

일두 정여창 선생의 위패를 모신 남계서원은 조선 명종7년(1552)에 개암 강익이 문헌공 정여창 선생의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사액을 받은 서원인데, 사액서원은 왕이 직접 편액과 서적, 토지 등을 하사한 서원이다. 숙종3년(1677)에 문간공 정온을 배향하고 숙종 15년(1689)에 강익을 배향하였다. 또, 별사에 뇌계 유호인과 송난 정홍서를 배향하였다가 고종 5년(1868)에 별사를 폐지하였다.

최희만(영남삶터탐구연구회, 오성고 교사)

참고자료:삶터탐구활동 길잡이(대구남부교육청)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