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농촌마을이 떠들썩하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귀향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덕분이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인구 130여명의 작은 농촌마을은 밀려드는 관광객들과 특혜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퇴임식 다음날인 2월 26일 노 전 대통령이 둥지를 튼 봉하마을을 찾아가 봤다.
◆차분해진 봉하마을
봉하마을을 찾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구에서 차로 1시간 남짓 거리. 김해시 진영읍에 다다르기 10㎞ 앞부터 교통 표지판이나 가로등마다 매달린 노란 풍선과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막상 봉하마을에 도착하자 전날 1만여명의 인파가 찾았던 귀향 기념행사의 잔향은 거의 가신 상태였다. 대신 행사 뒷정리에 한창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환영하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과 플래카드가 100여개 걸려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위로는 대형 애드벌룬에 매달린 대형 현수막과 태극기가 바람따라 춤을 췄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위에도 대형 환영 현수막이 오색 풍선에 매달려 이리저리 나부꼈다.
마을 입구에는 빌라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재 건물 외벽의 마감 작업을 하는 상태. 지하 1층, 지상 2층에 89~323㎡(14가구) 규모로 오는 5월쯤 완공될 계획이다. 주차장 옆에는 지상 2층, 연면적 365㎡ 규모의 봉하마을 종합복지관이 말끔하게 서 있었다. 남녀 노인실과 회의실, 도서실, 정보실, 체력단련실 등을 갖췄다. 주차장 옆에는 쉼터와 관광안내소 등이 있었다.
생가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 설치한 소형 플래카드 23개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2003년 취임 후부터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까지 사진과 치적을 소개하는 내용. 줄지어 선 대형 보드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글들이 빼곡했다. 하지만 들뜬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부 지지자들이 기념수건과 플래카드를 흔들며 환호하긴 했지만 차분히 주변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이 대다수였다.
◆정말 호화판일까
입구 주차장에서 3분쯤 걸어가자 노 전 대통령의 사저와 생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저 주변은 아직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인부들이 드나드는 걸로 보아 조경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듯했다.
사저는 지하 1층, 지상 1층 건축 연면적 1천227㎡ 규모. 'ㄷ'자 구조로 3채의 독립건물이 연결되는 형태였고 전면부에 유리창 수십개를 들어가 햇볕이 잘 들 것 같았다. 청와대는 사저 부지매입비 1억9천만원, 설계비 6천500만원, 공사비 9억5천만원 등 12억원이 들었으며 노 전 대통령의 사비로 충당됐다고 밝혔다. 사저 앞은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도록 1.5m 높이의 석축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 수십그루의 소나무와 대나무 등 나무가 심어져 울타리 역할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생가는 70㎡ 남짓한 단층 건물로 지붕과 벽면이 말끔하게 보수돼 있다. 생가의 원주인인 하모(70)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드나들었다. 사저 앞에 몰려든 관광객들은 행여 노 전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몰려들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자 관광객들이 환호했고, 노 전 대통령은 '안녕하세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와이셔츠와 밤색 바지, 회색 상의에 슬리퍼를 신은 소탈한 모습이었다.
봉하마을은 주말이면 수십~수백명까지 찾아오는 '관광지'가 됐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첫 해인 2003년 한해 동안 19만8천700명, 지난해에는 6만1천명이 다녀갔다. 기자가 찾은 2월 26일 역시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500~600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둘러본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호화롭지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지자 일행들과 봉하마을을 찾았다는 김모(42·여)씨는 "사저가 모양이 특이하긴 하지만 호화로운 것 같진 않다"며 "시민사회 주권운동을 하시겠다던데 앞으로도 계속 활동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관광객 김영미(36·여)씨는 "봉하마을에 수백억이 투자된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와보니 실감 못하겠다"고 했다.
◆심란한 주민들
봉하마을은 50가구, 130여명이 사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걸어서 10분이면 다 둘러볼 정도. 시골마을이 으레 그렇듯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노무현 생가'라는 표지판이 없으면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다. 허물어진 빈집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봉하마을은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주민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농한기인 탓에 집안에 머물거나 외출한 주민들이 대부분인 탓이라 했다. 어렵게 만난 주민들은 언론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 지난 2006년부터 노 전 대통령 사저 조성 공사가 시작되면서 외지인들의 발길이 잦아졌고, 봉하마을 특혜 논란이 일면서 어지간히 기자들에 시달렸다 싶었다.
주민들은 "우리는 아는 것도 없고 할말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주민은 "대통령이 퇴임하고 고향에 내려와서 산다는데 우리는 좋다"며 웃어보였다. 대통령의 귀향으로 마을이 발전할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거야 돼봐야 아는거지. 그리고 이 시골에 나아질게 뭐 있겠나"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나타냈다. 전직 대통령의 귀향으로 소란스러워진 마을 풍경에 불평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또다른 주민(79)은 "기념사업을 한다고 마을에 수십억원을 들인다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며 "괜히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한다며 논두렁도 못태우게 하고 쓰레기 치우라고 할까봐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무성한 특혜 논란 살펴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귀향 전부터 봉하마을은 각종 특혜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봉하마을이 관광 자원화되는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이 '엄청난 혈세가 투입되는 노무현 타운'이라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고 청와대가 '흠집내기식 왜곡보도'라며 반박하고 나서 갈등을 빚었다. 봉하마을을 둘러싼 각종 논란을 정리했다.
◆노무현타운 조성?=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포함한 이 일대 부지는 16필지 3만6천459㎡에 이른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주변의 땅을 노 전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들이 매입, 이른바 '노무현 타운'으로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한 시사주간지는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사저 옆 6개 필지를, 부산상고 동문 강모씨가 생가와 바로 앞 2개 필지를 각각 구입했고,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측근인 정모씨가 사저 뒤 임야 2개 필지를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지난달 19일 "소유자들이 각기 다른 동기와 목적에 따라 취득한 것을 '노무현 타운' 운운하는 것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 자세를 벗어난 것"이라고 맞섰다.
◆수백억원의 혈세 투입 논란=김해시가 총 사업비 75억원을 들여 봉하마을을 지역 명소 및 관광 자원화할 계획을 세운데 대해 일부 언론에서 255억원이 들어가는 진영시민문화센터 건립을 비롯해 ▷진영공설운동장 개·보수(40억원) ▷화포천 생태환경 복원(60억원) ▷봉화산 산림 경영 모델숲(30억원) ▷경호시설건립(35억원) 등 총 495억원이 투입된다고 주장한 것.
그러나 문화센터, 공설운동장, 화포천은 김해시 곳곳에서 추진되는 사업으로 봉하마을과는 별개이며 봉화산을 '산림경영 모델숲'으로 조성하는 것은 산림청이 200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건강한 숲 가꾸기 사업'의 일환이라는 반박이 나왔다. 청와대는 "김해시가 구미시(박정희), 거제시(김영삼), 전남 신안군(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의 생가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며 "액수를 최대한 부풀리기 위해 퇴임 대통령의 경호시설까지 합산한 것은 정략적 보도"라고 지적했다.
◆골프장? 잔디밭?=사저 오른편 잔디밭과 소류지를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골프연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9월 한 시사주간지는 "연못 아래 잔디밭을 꾸며놓고 노건평씨가 불법으로 골프연습장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소류지도 개인연못처럼 활용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건평씨는 다른 시사주간지를 통해 "잔디밭은 소득용으로 재배하는 것일 뿐 골프연습장이 아니다"며 "골프채는 손자의 장난감이고 골프공은 한개에 400원 짜리인데 호화생활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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