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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갤러리분도 '정주영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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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추상적 재현

▲ 정주영 作
▲ 정주영 作 '북악산3'

정주영전 / 19일까지 / 갤러리분도

한국의 전통 산수화에서 자연의 경치를 그려내는 방법을 오늘날 유화에 적용해보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추상표현주의의 페인팅 방식으로 자연의 숭고한 표정을 묘사해보면 또 어떻게 될까? 분도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정주영전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하면서 전통을 현대화하는 또 다른 관점을 경험하게 해준다. 작가는 그림 타이틀로 자신에게 친숙한 산의 이름들을 붙여 놓았지만, 화폭에 담긴 내용은 주로 그 산 일부의 모습이다. 이 전시에 제출된 그림들은 사실적인 설명을 피한 바위의 색채와 형태감 위주의 표현들인데 거기에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과감한 구성이나 힘찬 붓질 같은 추상적인 표현 동기를 암시할 뿐이다.

대상의 근원적인 모습을 그려내려는 의도는 사물의 외관을 직접 재현하기보다는 추상형식으로 변형시킨다. 추상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의 상상력이 화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능케 해주던 환영은 붕괴되고 그 대신 평면화가 된 화면층에 시선이 멈추게 된다. 표층에 보이는 것은 붓질의 속도나 방향, 재료의 두께가 형성하는 물질성 그리고 평면에 맺힌 상의 구성 등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의 경우 대상에 대한 상상작용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추상화시켜도 여전히 남아있는 형태의 상징기능 때문이다.

풍화에 노출된 바위면, 암괴의 골진 주름이 만들어 내는 기이한 형상들이 자연의 웅장한 리듬을 느끼게 한다. 모방적이고 재현적인 충동과 추상을 통해서도 산의 다양한 이모저모를 그려낼 수 있다. 또 감상자는 시간과 공간적 정황 등의 요소들까지 고려해가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동양화적인 표현형식을 참조할 경우 어느 정도의 추상화는 필연적이다. 이 작가의 작품들에서 전통회화의 운필법이나 형사(묘형)와 선염법의 특징들이 느껴지는데 그런 요소들은 추상적 상징성을 본래 그 자체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의 정신은 현대예술이 사물들과의 관계를 늘 새로운 방식으로 맺도록 요청한다. 그래서 현대 미술가들에게는 재현적인 모방을 벗어나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나 추상에 앞서 묘사하려는 본능과 자연에 대한 향수를 뿌리칠 수 없는 모순이 거기에 있다.

작품들에 묘사된 선은 렌즈 앞에서 흔들린 피사체의 영상 같은 미묘한 시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 견고한 바위의 형태와 질감이 불확정적인 선으로 묘사되는 이유가 뭘까. 명확한 선으로는 잡히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인가. 그림은 완성과 동시에 형태가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싫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작품은 이렇게 개념으로는 불가능한 것에 감각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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