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곧 기회다'
대구 의료계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수한 의료인력과 장비, 의술을 가지고도 마케팅 부재와 불친절, 환자(소비자)가 아닌 병원(공급자) 중심의 의료체계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역 대형병원들은 '우물 안 개구리'식 경쟁만 계속하고 있을 뿐 수도권 '빅5'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유출을 막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위기 의식을 느끼고 변화, 협력 및 공동 대응 등 공격적인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의료산업 유치 및 육성, 적극적인 홍보, 마케팅과 친절, 환자 중심의 의료 서비스 등 뼈를 깎는 노력만이 '의료도시, 대구'를 만들 수 있다. '대구' 하면 '의료도시'를 떠올리고 찾아올 수 있도록 '대구'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도 '의료도시, 대구'를 향한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우수한 인프라
의료산업이 대구경북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대구의 의료 인프라는 거의 서울 다음 수준이다. 의과대학 4곳과 한의대 및 치대 각각 1곳, 약대 2곳, 간호대 5곳, 전문대 간호과 5곳 등 의료인 양성 교육기관과 병원 인프라는 뛰어나다. 게다가 경북대병원과 대구한의대에 각각 양·한방 임상시험센터가 갖춰져 있고, 대구가톨릭대병원엔 바이오안전성센터도 자리 잡고 있다. 크고 작은 병·의원(한방 포함)도 2천개가 넘는다. 의료 수준과 질도 높아 수술 건수가 전국 상위에 랭크된 병원도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6년 기준으로 전국 병·의원의 수술 건수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대학병원, 종합병원, 중소병·의원 10여곳이 적게는 1개, 많게는 7개 수술 분야에서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발간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6년 지역별 의료이용통계'에 따르면 거주지 내 의료기관 이용 실적의 경우 대구가 91.9%로 제주 92.9%, 부산 92%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3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다른 지역 의료기관으로의 유출이 적다는 것이다.
◆돌파구가 보인다
대구를 의료도시로 만들기 위한 사업도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대구시는 의료분야 연구개발 성과의 제품화, 서비스화를 위해 연구기관, 임상시험기관, 제조업체, 병원 등을 집적화시킨 메디바이오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인 재활, 요양을 필요로 하는 환자 및 의료 관련 인력을 지원할 수 있도록 치료, 주거, 요양, 유통, 금융 등의 의료와 생활 전반의 시설을 연계한 집적단지를 만든다는 것. 시는 이를 통해 정부가 구상 중인 첨단의료복합단지도 유치하겠다는 계획인데, 의료도시 대구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유치해야 하는 초대형 국책 프로젝트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사업은 범정부적으로 아시아 최고의 의료산업 허브를 구축한다는 계획으로, 모두 5조6천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지역 병·의원들의 모임인 대구경북병원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1단계로 공동 홍보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병원회는 시민 의료 환경을 개선하고 대구 병원과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의료관광객 유치에도 투자해야
수도권으로의 환자 유출을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국내는 물론 중국, 동남아 등에서 의료 관광을 올 수 있도록 '의료도시, 대구'를 만드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구시도 의료관광 전담 부서를 신설해 의료관광객 유치에 나섰고, 병·의원들도 자체 및 협력을 통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시와 지역 병·의원들의 공동 홍보로 의료도시로서의 대구 브랜드를 높이는 한편 대구경북 인근의 중소 도시와 경남, 충청권 등의 환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의료관광객 유치를 위한 'VIP 프로그램'을 만들고, 의료관광 전문 여행사나 코디네이터, 해외 바이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 행사 참가, 해외 설명회 개최 등 대구 및 병원 의료서비스를 알려 해외 의료관광단을 유치하는 데도 적극 나서야 한다. 여건도 고무적이다. 국제의료관광협회의 '아시아지부'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설치되고, 한국을 의료관광 목적지로 부각시키기 위해 한국 병원들이 해외바이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적극 활용할 경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환자 중심의 시스템 개선부터
대구가 의료도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친절과 환자 중심의 진료 체계 구축이 우선이다. 수도권 대형병원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먼저 '감동 경영'부터 시작해야 한다. 친절은 물론 환자 눈 높이에 맞춘 성실한 상담과 설명, 진료 절차 간소화를 통한 대기 시간 단축 등 과감한 변화가 필수다. 지역 대형병원들이 수술 및 진료 시스템을 환자 편의 위주로 개선해 진단부터 수술, 재활까지 한번에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암 진단을 받아 불안한 환자에게 수술이나 입원 일정에 대한 설명 없이 무작정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하면 곧바로 '환자 서울 유출'로 이어진다. 병원 내, 병원 간의 변화도 필요하다. 병원 내에서의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원 간의 불협화음과 힘겨루기로 환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또 대학병원 간, 대학병원-병·의원 간의 불신과 자존심 때문에 대구에서 치료 가능한 환자를 수도권 병원으로 안내해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신뢰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휴일이나 공휴일, 야간에도 일부 외래진료가 가능한 진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의료도시, 대구'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호준기자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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