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예술과 삶 어우러진 '마산문신미술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는 각자 특유의 색깔이 있다. 독도'울릉도로 대표되는 동해엔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닮은 푸르름이 있는가 하면 갯벌을 무대로 질박한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든 서해에는 황토색이 오롯하다. 그렇다면 남해는?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되는 가곡 '가고파'에서 연상되듯 남쪽 바다에는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을 닮은 쪽빛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다. 그런 남해를 대표하는 마산(馬山)에 있는 '문신미술관'은 치열하게 일생을 살다간 한 예술가의 삶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란 화두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곳이다.

문신(文信'1923~1995). 70여년에 이르는 한 예술가의 삶을 짧은 한두 문장으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는 그와 얽힌 작은 이야기를 통해 문신이 어떤 존재였던가를 살펴보는 게 먼저일 것 같다. 1992년 예술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조각가 3명을 선정, 초대한 전시회가 열렸다. 3대 조각거장전에 초대된 사람은 영국의 헨리 무어, 미국의 알렉산더 칼더, 그리고 한국의 문신이었다. 프랑스인들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들은 문신의 작품들을 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프랑스 정부는 "한국인 문신이 프랑스에 영광을 안겨주었다"고 격찬했다.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예술가가 바로 문신이었다.

화가로 출발해 조각가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문신은 생전에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서민과 같이 생활하며, 신처럼 창조한다"고 그의 작업 노트에 적었다. 경남 마산 문산1길 71번지 추산동 언덕에 자리잡은 '마산시립문신미술관'을 찾으면 그가 남긴 명언을 체감할 수 있다. 문신이 세상을 떠난지 13년이 됐지만 마산의 쪽빛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문신미술관에 서면, 그의 고결한 예술혼과 치열한 삶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문신은 1980년 어린 시절을 보낸 마산으로 돌아와 미술관 건립에 전념했다. 미술관 터는 청소년 시절 일본에서 고학할 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아버지에게 보내 산 언덕바지 땅이었다. 여기서 문신은 '노예처럼 작업'을 했다. 직접 나무를 심고, 언덕을 깎아 연못을 만들고 큰 돌을 쌓아 옹벽과 계단을 만들었다. 스스로 미술관 설계 밑그림도 그렸다. 미술관 야외 바닥을 직접 디자인하고 대리석을 일일이 잘라 하나하나 붙였다. 문신미술관이 완성되는 데 꼬박 14년이 걸렸다. 천신만고 끝에 대지 7천58㎡에 들어선 미술관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조각 작품'. 그렇기에 어떤 이는 미술관을 두고 "그가 평생을 바쳐 쓴 이력서이고, 영혼이 깃든 명작이며, 사랑하는 고향 주민들에게 바친 필생의 선물"이라 했다. '선물'이란 표현처럼 문신의 유언에 따라 2004년 미술관은 마산시에 기증돼 '마산시립문신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문신미술관 마당에 들어서자 '콩코드' '우주를 향하여' 등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높이 3,4m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 작품들이 보는이를 압도한다. 문신이 직접 만들어 붙였다는 아름다운 대리석 바닥과 멀리 보이는 남해의 쪽빛 바다, 그리고 우주와 화합 등을 주제로 한 조각 작품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감동을 선사한다. 미술관 안 제1전시관에는 '문신예술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해조(海鳥)Ⅱ'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2층 기획전시실에는 조각 작품들은 물론 조형 작업의 원천이 된 도로잉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문신의 조각 작품은 좌우대칭(시메트리)의 추상이지만 곤충'식물'인간 등의 구상적 형상을 연상시키기도 해 기하학적인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운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흑단'주목'돌'금속 등과 같은 견고한 재료를 끊임없이 갈고 닦는 과정을 반복해 조각의 표면이 윤기가 나고 견고한 것도 특징이다. 한 미술평론가는 "문신은 특정한 자연 사물을 묘사하는 대신 자연의 원리를 추상화함으로써 일반적인 생명과 우주의 원리를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차가운 금속이나 단단한 석질, 흑단 등의 재료에 생명의 원리를 불어넣고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창조해내는 것이다"고 했다.

문신의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가슴에 와닿은 느낌 하나! 그의 작품들은 추상이지만 보는이를 결코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올까? 생전에 누군가 문신에게 "이것으로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문신의 답은 스님들이 하는 선문답(禪問答)을 떠올리게 한다. "표현하려 한 게 아니고 그 자체가 표현된 거다. 요컨대 숨겨져 있던 생명이 그런 미로서 나타난 거다. 그러니 무어라고 할 수가 없다."

-마산의 명소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의거가 마산을 상징하는 정신이라면 마산어시장은 마산 사람들의 질박한 삶을 대표하는 곳이다. 2천여개가 넘는 점포가 몰려 있는 어시장은 한해 매출액 1천억원에 하루 손님 3~5만명에 이르는 마산의 대표적인 명물이다.

어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이 횟집 골목. '봄 도다리, 가을 전어' 식의 계절 생선들을 비롯해 마산이 아니면 좀체 맛볼 수 없는 자연산 광어'도미 등의 고급 어종들이 횟집 수족관마다 펄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손님의 주문에 따라 즉석에서 신선도 높은 생선을 그것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고, 투박하면서도 인정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며 시장 특유의 걸쩍지근한 삶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등 마산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마산을 대표하는 5가지 먹을 거리가 있다. 아구찜'전어회'복요리'미더덕'국화주가 바로 마산 5미(味)다. 마산 오동동에 가면 10여곳의 음식점들이 몰린 아구골목이 있다. 오래 전 오동동에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어부들이 가져온 아구를 된장'고추장'마늘'파 등을 섞어 쪘다고 한다. 북어찜의 요리법을 아구에 적용한 것. 맛이 괜찮아 단골 손님들에게 술안주로 권하기 시작하면서 아구찜이 탄생했다.

마산 아구찜은 다른 지역 아구찜과는 사뭇 다르다. 한겨울 찬바람 속에서 20~30일 말린 아구를 냉동창고에 보관해 놓고 쓴다. 말린 아구에 콩나물을 넣고 매운 고춧가루를 풀고, 마산의 명물 미더덕을 넣어 범벅해서 찐 것으로 개운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꾸득꾸득한 맛이 일품이지만 그 맛을 미처 모르는 사람이라면 생아구찜을 먹는 것도 괜찮다.

마산에는 술꾼들을 위한 독특한 술집인, '통술집'이 있다. '통술'은 한마디로 싱싱하고 푸짐한 각종 해물 안주가 한상 통째로 나오는 술상이다. 처음 술상 가득 차려진 입맛 당기는 안주가 가득한데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맛있는 안주들이 계속 줄을 잇는다. "술이 오래갈까 안주가 오래갈까"라는 주당들의 짖꿎은 시합과 함께 마산 통술집 아지매의 푸짐한 안주공세는 끊이지 않는다. 안주들의 주종은 마산어시장을 코앞에 끼고 있는 만큼 싱싱한 해산물이 단연 으뜸이다.

볼락회'꽁치'해삼'전어'아구수육'조개'산낙지는 물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오징어와 주꾸미 등이 술맛을 더한다.

마산 통술집 원조거리는 1970년대부터 오동동과 합성동 골목이 주류였지만 지금은 신마산에 '통술거리'가 생겨 상권이 상당히 이동했고 신마산 등지에는 17여곳이 성업중이다. 오동동 통술골목에도 옛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통술집 10여곳이 건재하다. 푸짐한 안주와 함께 맥주 3병이 기본으로 차려지는 술상은 보통 4만원선이며 이후부터는 소주(5천원선)든 맥주(3천원선)든 술값만 지불하면 안주는 배가 불러 먹지못할 정도로 계속 나온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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