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꼭두'의 거짓 침묵

아름다운 우리말 거친말만 난무/치부 감춘 침묵은 독설보다 나빠

지난 한글날 제주도를 운항하는 J 항공사는 기내 방송을 순 우리말로 이렇게 방송했었다.

"오늘 저희 '날틀'(비행기)에 올라타 주신 여러분을 기쁘게 맞이합니다. 손 전화기(휴대폰)는 날틀의 '나래 짓'을 '해코지'할 수 있으므로 꼭 꺼주시기 바랍니다."

이륙 직후엔 "이 날틀이 제주까지 나는 시간은 뜬 뒤(이륙 후) 55분으로 어림(예상)하고 있으며 '날틀 꼭두'(기장)는 OOO 입니다."

그리고 착륙 직전엔 "날틀이 뚝 멈춘 뒤 '앉은 자리 띠 가리킴 불'(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일어나지 마시고 시렁(짐칸)을 여실 때는…"이었다.

반대로 북한 민항기의 기내 방송은 어떨까?

"JS152승무원은 리용객(승객) 여러분을 렬렬히 환영합니다. 승무원의 '방조'(도움)가 필요하신 분은 머리 위 금단추를 눌러주시고…."

곽밥(기내식)을 다 먹고 난 뒤 착륙 무렵엔 "우리 비행기가 강하(착륙)를 시작했습니다. '걸상 띠'(안전벨트)를 매 주시고…"였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상처 속에 다 같은 세종대왕의 후손이면서 서로 달리 쓰는 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언어의 分化(분화)는 한민족의 문화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걸상띠와 안전벨트, 곽밥과 기내식 정도의 작은 차이다.

앞으로 남북 언어학자들이 머리를 맞대면 서로간의 순수한 말맛을 조화롭게 다듬어 맞춰 낼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걸상띠'와 '안전벨트' 같은 명사 표기의 차이가 아니라 말을 쓰는 사람의 의식과 格(격)의 수준이 문제요, 과제다.

예를 들면 교향곡을 방송하면서 "지금까지 들으신 음악은 교향악 '美帝(미제)의 숨통을 끊어라'였습니다"는 북한 아나운서의 방송언어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우리말이 아름답고 과학적인 세계적 문화 창제물이라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가 인격 없이 독하고 거칠게 쓴다면 우리말과 글의 자랑스러움은 퇴색된다.

북한 방송과 노동신문의 사설은 늘 그런 강렬한 형용사나 부사를 쓴다. 극렬한 억양은 물론이고 모든 단어들은 호전적이고 도전적이며 '불바다' 같은 독설적인 언어들이 주류다.

거칠고 독살스런 말일수록 그 말의 근거가 허약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북한의 우리말들이 거칠어지고 선동적 말투로 변질돼 가는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체제 탓이라 치부해 두자.

요즘 우리 쪽의 말들은 왜 그런가? 온통 거칠고 과장되고 거짓투성이다. 국정감사를 보면서 느끼는 많은 국민들의 정서다.

국정감사장에 오가는 나라 말들은 거친 힐난, 과장된 비유보다는 깊이 있는 분석, 논리에 닿는 추궁, 품위가 살아있으면서도 매섭게 파고드는 말맛을 풍겨야 감사 내용이 믿음을 더 얻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잘난 의원님들이 쏟아낸 매국노, 파렴치 등 거칠고 순화되지 못한 언어들은 교향곡에까지 '숨통을 끊는다'는 曲目(곡목)을 붙이는 북한의 세련되지 못한 말 품새를 뺨친다.

심지어 민주당은 정부 공격용 용어를 현상금을 걸고 공모까지 했다.

돈까지 걸어가며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구호를 찾고 나라살림을 살펴야 할 국정감사장을 공격적 語句(어구)를 사용해야 하는 정치 게임장으로 인식한 의식과 格의 문제인 것이다. 거친 말에 대해서는 하느님조차도 비판적으로 말씀했다.

'그들은 속으로 악을 꾀하며 날마다 싸움질만 궁리한다. 혓바닥은 뱀처럼 날카롭게 하고 입에는 독을 품고 있다.'(구약성서 시편)

그런 독설보다 더 질 나쁜 말은 무엇일까? 불리하면 진실을 감추고 치부를 숨겨 말하지 않는 '침묵'이다. 침묵도 하나의 의사표현이고 말이다. 수만 명의 공직자들이 쌀 직불금을 부당하게 타낸 부패를 알고서도 대선에 불리할까봐 '국민이 알면 폭동이 나겠구먼' 말 한마디로 감추고 침묵시켰다는 증언이 사실이라면 좌파 정권 꼭두(우두머리)의 의도된 침묵이야말로 감사장의 독설보다도 더 질 나쁜 거짓된 말이다.

金廷吉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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