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가을 단상(斷想)

올해는 초가을도 없이 여름에서 곧바로 늦가을로 넘어가 버린 형세이다. 가을은 누구나 쓸쓸함을 느끼게 마련인데, 고대 황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漢(한) 武帝(무제)는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황제 중 한 명이다. 기원전 141년에 16세의 나이로 즉위해 54년 동안 漢(한)나라를 다스렸다. 현재 중국 민족을 漢族(한족)이라고 부르는 것도 漢(한)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다. 무제 전까지 한나라는 매년 흉노에 막대한 공물을 바치고 평화를 구걸해 왔는데, 무제가 처조카 곽거병을 보내 흉노를 평정한 것이다. 무제는 또 고조선도 침략했는데, 『漢書(한서)』「韋賢(위현) 열전」은 "동쪽 조선을 정벌하고, 현도·낙랑을 일으킴으로써 흉노의 왼쪽 팔을 끊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조선도 흉노처럼 한나라의 큰 우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흉노와 동이처럼 주위의 강성한 민족을 억눌렀다는 이유로 중국인들이 높이 사는 군주가 무제이다. 그런 무제가 한 번은 河東(하동)에 행차해 후토(后土: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고, 都邑(도읍)을 돌아보며 자신이 이룬 성취에 크게 기뻐했다. 汾水(분수)에 배를 띄우고 신하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었는데, 매우 기쁜 생각이 들어 스스로 지은 시가 '가을바람에 부치는 노래'라는 뜻의 「秋風辭(추풍사)」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은 기쁘기보다는 쓸쓸하다. "가을 바람 일어나니 흰구름이 날도다/ 초목이 떨어지니 기러기는 남으로 돌아가도다/ 난초는 아름답고 국화는 향기롭도다/ 아름다운 사람 생각 잊을 수가 없도다 …… 환락이 극진하나 슬픈 생각 일어나도다/ 젊음이 얼마이겠는가! 늙는 것을 어찌하리오!(秋風起兮白雲飛/草木黃落兮鷹南歸/蘭有秀兮菊有芳/懷佳人兮不能忘……歡樂極兮哀情多/少壯幾時兮奈老何)"

모든 것을 다 지닌 황제가 쓸쓸함을 느낀 이유는 둘이었다. 傾國之色(경국지색: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녀)의 미녀 李姸(이연)이 일찍 세상을 떠나 그의 곁에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아름다운 사람 생각 잊을 수가 없도다'라는 시구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또 하나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자신도 저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젊음이 얼마이겠는가! 늙는 것을 어찌하리오'라고 읊은 것이다.

그러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에 쓸쓸함을 넘어 풍만을 준다. 조선의 宣祖(선조)는 戰時(전시)에는 용렬한 군주였지만 학문에도 능했던 학자 군주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성리학자들이 이단시하던 양명학에도 호감을 가졌는데, 양명학은 '異業同道(이업동도)'라고 직업은 다르지만 길은 같다고 표방했다. 이는 사대부들도 농사짓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선조는 사대부의 농사를 노래한 시를 남겼다. 조선 중기 漢文四大家(한문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澤堂(택당) 李植(이식:1584~1647)의 文集(문집)인 『澤堂集(택당집)』에는 '宣廟(선묘:선조)께서 부채에 쓰신 詩帖(시첩)에 받들어 제하다'라는 시가 있다. 선조가 부채에 쓴 시는 "가을에는 물가 안개 속에서 낚시질하고/ 봄에는 밭에 나가 비 맞으며 밭을 가네(秋水和煙釣/ 春田帶雨耕)"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식도 "그대는 새로 낚시터 돌을 쓸지만/ 나는 오래전에 묵은 밭을 갈았네/ 더 이상 늦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지/ 이 일 말고 다시 무엇을 경영하리요(釣石君新掃/■田我舊耕/歸依須及早/此外更何營)"라고 노래하고 있다.

농경국가 시절에는 풍년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 큰 풍년을 大有年(대유년)이라고 한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宣公(선공)조에 "겨울에 큰 풍년이 들었다(冬大有年)"라고 쓴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래서 『정조실록』 14년(1790) 음력 9월 30일자는 '大有年(대유년)'이라고 짤막하게 대풍의 기쁨을 노래했다. 반면 흉년은 대부분의 백성들에게 큰 고통이지만 이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청장관 이덕무가 '秋雨(가을비)'란 시에서 "쌀값이 올라 여러 장사꾼 기뻐하니/ 단지 바라는 것은 풍년이 들어 이런 무리들 없어지는 것뿐(乍騰米價群商喜/但願年豊此輩休)"이라고 노래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올해 농사는 풍년이라지만 여타 경제지표 때문에 각종 시름이 깊다. 산업사회로 접어든 탓이지만 이 가을 풍년을 기뻐했던 선조들의 마음으로 잠시 돌아가는 것도 해롭지는 않으리라.

이덕일(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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