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사람들-등대원⑤

▲ 독도 등대원 김준동(왼쪽) 씨와 한대규 씨가 축전지실에서 용액 점검을 하고 있다.
▲ 독도 등대원 김준동(왼쪽) 씨와 한대규 씨가 축전지실에서 용액 점검을 하고 있다.

'운량 7, 풍향 23, 풍속 07, 시정 7, 일기 02….'

24일 오후 2시 현재 독도의 기상 상태다. 독도 등대의 아침은 기상청과의 기상 전문(電文) 송수신 소리로 열린다. 기상청은 편의상 독도 등대에 의뢰, 기상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등대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측정기기에서 수집한 기상정보와 목측(目測)을 토대로 독도의 날씨를 알려주고 있다. 또 날마다 바닷물(해수) 온도를 측정해 동해수산연구소에 통보한다.

오전 10시쯤이면 으레 B조 김준동(34·포항 남구 해도2동) 등대원이 길쭉한 깡통에 끈이 달린 모양의 수온측정기를 들고 동도 접안장에 나타난다. 여름이면 바닷물 온도를 재통보하고 연락선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내년이면 등대 근무 10년차, 이번 달로 독도 근무 2년 만기. 독도 고참으로서 이젠 진득할 만도 한데 그래도 연락선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7세, 3세 된 두 아이의 아버지인 김 등대원은 대학에서 전자과를 나왔다. 졸업하던 해에 IMF가 터져 일자리 문제로 마음고생을 했고 경비업체 기계 설치 일을 10개월가량 하다가 등대요원으로 들어왔다. 처음 포항해양항만청 근무를 시작으로 호미곶, 울릉도 도동과 태하를 거쳐 2년 전 독도로 왔다.

그는 등대에 올 때까지 바다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경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교를 다녀 바다를 그저 모래사장과 파도 등 '낭만'이 있는 곳으로 여겼다. 그러나 등대 생활 10년 동안 태풍 '매미'를 목격하고 '나비'도 겪어봤다. 이제 그는 바다의 표정을 읽고 경외할 줄 아는 바다 사람이다.

독도에 근무한 이후부터는 친구나 친척들로부터 뱃사람 대접을 받는다.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나갈 수 없고 경조사에도 얼굴을 내밀 수가 없다. '괄호 밖 사람'이 되어버린 듯해 서운하다. 그래도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두살이던 딸아이를 한달 만에 안았을 때 아빠를 알아보지 못해 정말 서운했다.

가족한테 미안하고 마음 졸일 일은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 졸지에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마침 뭍에 있어 다행이었지만 만일 요즘 같은 겨울이었다면 속절없이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0여일째 파도가 일어 고깃배조차 끊어진 지금은 헬기가 아니면 나갈 수 없다. 부모상을 당해도 아직 독도에서 헬기를 타고 뭍으로 나간 등대원은 없다. 등대원들은 이럴 때 최소한 자식 구실을 할 수 있는 배려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B조의 전기전문가 한대규(37·포항 북구 양학동) 등대원도 가족들에게 미안하긴 매일반. 여름에야 연락선이 들어오지 못해도 하루, 이틀이지만 겨울은 오직 독도경비대 부식을 운송해주는 해양경찰청 경비정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달마다 들어오는 경비정은 예정된 날짜에 물결이 거세 입항하지 못하면 다시 일정을 조정해서 들어오는데 그 기간이 일주일, 열흘 걸리기가 예사. 한씨의 7세 된 딸아이는 '아빠 안 와'라며 수시로 전화한다. 일단 1차 교대시기를 놓치면 등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민감해진다.

늘 힘겹고 서글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요즘 군대에서도 받아보기 힘든 위문편지를 독도에 근무한다는 특전(?)으로 받아보는데 더없이 뿌듯함을 느낀다.

독도를 지키고 가꾸는 일은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가장으로서 가족과 떨어져 늘 걱정하고 박봉(薄俸) 속에서도 묵묵히 본분을 다하는 등대원의 아픔이 보태져 독도는 오늘도 의연한 것이다. 이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한 마디의 격려, 한 줄의 위로를 보낼 수 있다면 독도 밤바다의 불빛은 한결 빛날 것이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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