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길어도 안 되고 짧아도 안 된다"

30년 전쯤의 어느 날 같은 학년의 학생들 모두가 운동장에 모여 집회를 연 적이 있다. 구호는 '스포츠형을 허용해 달라'라는 것이었다. 두발 자유화는 언감생심, 그저 스포츠형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소박하게' 호소한 것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과격한' 행동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학교측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위생상의 문제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측으로부터 "지금부터 스포츠형이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외모에 민감한 청소년 시절이었던 까닭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반겼었다. 그리고 '앞머리 3㎝'를 휘날리며 거드럼을 피웠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발사 아저씨의 실수로 빡빡머리가 되어버리는 낭패를 당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붙일 수도 없으니 자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빡빡머리 때문에 다음날 더 큰 낭패를 당하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학교에 가자마자 교무실에 불려가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났다. 이유는 '반항한다'라는 것이었다.

'위생적인 빡빡머리'도 항상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규칙의 핵심은 '시키는대로 하라'라는 것이었다. 일사불란이 생명이었던 유신 말기의 고등학교 풍경이니 그럭저럭 시대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21세기의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달 초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두발 자유', '인권 보장', '학생도 인간이다, 인격적으로 대우하라' 등의 내용을 쓴 피켓을 들고 학내 집회를 열었다가, 수업 중에 불려나가 강제로 진술서를 써야 했고, 주동으로 지목된 학생은 징계를 받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난 5월에는 울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비슷한 집회를 열었다가 강제 해산되었고, 이에 대해 지난 10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의 집회 자유 침해'로 규정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학생들의 집회 자체가 징계를 당하거나 해산을 당한다니, 어쩌면 30년 전보다 더 못한 것 아닌가?

21세기의 학교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또 하나의 광경은 눈과 귀를 의심하게까지 한다. 지난 10월 실시된 일제고사 때, 학생과 학부모의 의사를 물어서 시험을 원하지 않는 학생에게 자율학습과 체험학습을 하게 한 서울시의 초·중등 교사 7명이 파면 또는 해임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해당 교사의 출근을 막기 위해 등굣길 교문에 방패를 든 경찰이 배치되었고, 학교의 문들에 자물쇠가 채워졌고, 교사를 배웅하려던 학생들이 경찰에 의해 가로막혔고, 교사들을 위한 탄원서를 받지 못하도록 학생들이 후문으로 하교 조치되었다고 한다.

전국의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시킨다고 비판받고 있는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는 것은 학생의 권리이다. 그 권리를 확인시켜주었다는 이유로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촌지를 받은 교사, 성추행을 한 교사까지도 경고와 견책으로 보듬어 안아온 교육청이, 교사에게는 사형선고에 해당하는 파면과 해직으로 대응한 것은 도를 넘은 일이다. 굳이 정당화 근거를 대려고 하면 하나 있기는 하다. '시키는대로 하라'라는 명령을 어겼다는 것이 바로 그것일 터이다.

'그래서' 선생님을 빼앗긴 아이들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분하고 억울하고 슬퍼"한다. 한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갈라놓았던 경찰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라고 했다가 "학생들이 너무 많이 욕을 해서 차마 제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공부에 내몰려 찌들어 있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다름 아닌 학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분노와 억울함과 슬픔을 심어주어서야 될 일인가? 더구나 다양성이 생명이라는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 아닌가? '시키는대로 하라'라는 교육을 받는 것은 20세기의'유신세대'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김창록 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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