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득렬의 서양고전 이야기] 비민주적 군주체제의 공포와 위협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이탈리아가 낳은 위대한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는 1513년 '군주론'이라는 작은 책을 저술했다. 많은 정치학자들이 이 책을 국역했으며, 국역본이 10여 종이 넘는다. 저자는 강인한 인상과 충격을 주기 위해 많은 경구를 활용하는 동시에 솔직한 필치로 글을 썼다.

저자는 이 책을 존경하는 피렌체 통치자인 로렌초에게 증정했지만 별다른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로렌초는 이 책을 받고 왜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을까? 아마도 그는 이 책에서 자화상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를 통일시켜 줄 새로운 군주상을 제시하면서, 군주정체의 사악한 국면을 부각시켰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비민주적인 군주체제가 가져오는 가공할 만한 공포와 위협을 경험하게 된다. 군주가 이 책을 읽는다면 소매치기 기법 일체를 집대성한 책을 저술한 부하 소매치기로부터 증정받은 소매치기 두목과 비슷한 심정이 될 것이다. 소매치기 기법이 공개된다면 두목은 책을 낸 부하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소매치기 영업비밀이 드러나면 소매치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찍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참주들에게 참주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참주정체의 참혹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통치방식을 제시하면서, 실제로는 시민들에게 군주제의 위험성을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오해되고 있다. 오랫동안 그는 군주에 영합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때문에 '마키아벨리적' '마키아벨리주의'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 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기이익과 통치권 수호를 위해 싸운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오해는 고쳐져야 한다.

'군주론'을 읽은 독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질 것이다. 한 부류는 마키아벨리의 의도대로 공화정이 어떻게 하여 군주정으로 전락하게 되는지를 인식하여 현실 정치가들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군주정의 기법을 마음에 새겨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를 선악으로 안내하는 양날개를 가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군주론'이 실제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더 많이 양산할 것인지는 언제나 흥미를 갖게 하는 문제이다.

신득렬 전 계명대 교수 paideia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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