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열차에 올라탄 우리에겐 희망이 없어요."
회사원 박인숙(38'여)씨는 최근 본 영화(설국열차)가 가슴에 와 닿는다. 기상 이상으로 세계가 종말을 맞은 가운데 유일하게 기차에 올라 탄 사람만이 살아남았고 그 기차는 칸 칸(꼬리~엔진칸)마다 신분이 나뉘어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요즘 전세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꼭 영화의 꼬리칸 승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의 꼬리칸 사람은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선 앞칸으로 옮겨갈 때마다 신분이 오르지만 전세열차에 올라탄 이들은 오르는 전세금에 점점 외지로 밀려날 뿐 앞칸으로 전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28일 전월세 대책 등 전세난을 잡기 위해 대책을 내놨지만 가을 이사시즌 전월세난을 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회통과 이후에나 정책이 시행되는 데다 이미 잦은 단기 처방으로 시장의 내성이 강해진 탓이다. 실제로 현재 지역 전세상황은 전세수요가 매매수요 전환 임계점이 훨씬 넘었는데도 좀체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그간 부동산 정책은 영화에서 꼬리칸 사람들이 먹는 양갱처럼 겨우 연명만 하되 실질적인 효과는 보지 못하는 것들 뿐이었다"며 "장기적인 청사진 제시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전세열차 꼬리칸 사람들
대구 동구 신서동의 전용 85㎡에 사는 전 모(41) 씨는 해가 바뀌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날이 갈수록 전셋값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억 5천만원 하던 전세금이 지금은 1억8천만원에도 구하지 못한다"며 "내년에 더 오를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고 말했다.
아파트 전세물량이 줄고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면서 집 없는 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 더군다나 가을 이사시즌을 앞두고 더욱 전세난이 가중될 전망이다.
육아 문제로 처가 인근 아파트에 세든 김모(39) 씨. 다음 달 전세 재계약을 할 예정이지만 집주인이 전세금을 3천만원 올려달라고 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사할 때 이미 3천여만원을 대출받았지만 추가 대출이 불가피하다. 그는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전셋값이지만 집값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출 이자만 늘어간다"고 말했다.
대구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이 지역에서 아파트 가격의 조사가 이루어진 2000년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전세 가구의 평균 보증금이 처음으로 1억 원을 넘어섰다. 전체 가구의 절반이 전'월세를 살고 있지만 수요가 여전히 많아 서민들의 전세난과 보증금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금융공사가 지난해 8월과 9월 전국 만 20∼59세 가구주 5천명을 대상으로 주택금융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세 보증금은 평균 1억183만 원으로 조사됐다. 전세 보증금은 2011년(9천47만 원)보다 1000만 원 이상 올랐다. 2010년(7천528만 원)과 비교해서는 35% 이상 오른 금액이다. 전체 전세 보증금 중 1억 원 이상의 비중도 2010년 26%에서 지난해 42.9%로 상승했다.
오른 전세금에 외곽으로 밀려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수성못 주변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이인성(38) 씨는 최근 집주인이 전세금 3천만원 올려달라고 해 남구로 이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씨는 "보통 5천만원씩 전세금을 더 달라는 주인이 많다던데 3천만원이면 추가 대출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현재의 대출금 이자도 내기 빠듯하다"면서 "집을 옮기는 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했다.
◆고리 끊긴 전세열차
대구의 경우 다른 지역과 달리 집값이 오르면서 매매와 전세수요자들의 엇갈린 기대심리가 초유의 전세난을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부동산114 대구경북지사에 따르면 상반기 대구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74%에 이른다.
아파트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60%를 넘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으로 예외는 인천(54.70%)과 서울(55.94%) 뿐이다.
지역별로는 광주광역시가 77.35%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대구(74.76%)가 두 번째였다. 이는 같은 시점 전국 평균 57%, 5대 광역시 평균 68%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대구지역 아파트 매매가격은 13.16% 상승했지만 대구 평균 전세가 상승률은 39.95%로 매매가 상승폭을 훨씬 웃돌았다.
통계에 따르면 전세가율은 70%에 달하면 전세수요가 매매로 돌아선다. 그러나 대구는 70%를 넘어섰고 달성군 등 일부 지역에선 80%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대구는 좀체 아파트 거래가뭄이 해갈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전세 수요가 매입 수요로 돌아서는데 최근의 추세는 매매 시장과 전세 시장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끊어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잦은 단기 부동산 정책 남발로 지역 부동산 시장은 주택 수요자와 매매희망자 간에 엇갈린 기대심리가 커졌고 결국 이는 다시 매매 가뭄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