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얼리어답터의 세계] 헝그리어답터'슬로어답터

신품 뜨면 '폭풍구매'…쓰던 건 즉시 중고시장에

긍정이 있으면 부정이 있기 마련. 얼리어답터에 대한 부작용과 함께 헝그리어답터'슬로어답터가 뜨고 있다.

◆'디지털 치매' 현상

디지털 혁명은 그만큼 편해졌지만 부작용이 존재한다. '중독'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디지털 의존' 증세가 심각해지고 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지인들의 전화번호와 주소 등을 적어두었던 수첩이 사라졌다. 수첩만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지워졌다. 아내의 전화번호는 1번이고 시골 어머님은 2번, 아들은 3번, 딸은 4번으로 단순하게 기억할 뿐이다. 건망증도 심해져 휴대전화에 메모해 놓지 않으면 약속조차 깜빡할 정도다.

늘 자동차 안에 있던 지도책도 내비게이션이 장착되면서 없어졌다. 지도책이 없어지면서 '길눈'도 어두워졌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은커녕 동서남북 방향도 못 잡고 헤맬 지경이 되었다. 이젠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어딜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당연히 지도를 읽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디지털 기술은 공부하는 방법도 변화시켰다. 국어'영어 사전도 전자사전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다. 10대들은 '사전'이라면 전자사전을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다. 손가락으로 책장 넘기며 단어 찾던 일은 이미 오래전 얘기가 돼 가고 있다.

또 얼마 전까지 화면을 콕콕 찔러 단어를 검색하는 '포인터'가 필기구를 대체하더니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그것마저 필요 없게 됐다. 이제 손가락은 필기구를 '쥐는' 게 아니라 화면을 '찍거나 긁는' 도구로 더 잘 활용된다. 학교에서 노트 정리도 휴대폰에 내장된 카메라를 이용해 하고 숙제도 키보드나 마우스로 한다. 당연히 필기구로 무언가를 쓸 일은 많지 않아 아이들 대부분은 '악필'이다.

◆헝그리어답터'슬로어답터

불황의 여파로 주머니가 가벼워지자 헝그리어답터(Hungry Adopter)가 뜨고 있다. 헝그리어답터는 단순히 신제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사용을 하다가, 중고로 팔아서 또 다른 신제품 구매 비용을 충당하는 소비자를 지칭한다. 얼리어답터와 헝그리어답터는 둘 다 신제품 마니아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는 있다. 헝그리어답터는 최초 신제품을 구매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하지만, 새로운 제품이 나왔을 때 기존 제품을 중고로 내다 팔아 구매 비용의 일부를 충당한다. 그러나 얼리어답터는 남들보다 빨리 신제품을 구매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과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제값을 다 주고 사서, 이를 소장하거나 자신이 계속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한 가지 차이는 헝그리어답터는 얼리어답터에 비해 제품을 교체하는 주기가 빠르고, 특정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고 신제품을 구매한다. 따라서 기기에 대한 평가가 매우 신랄한 편이다.

하지만, 일단 이들을 만족시킨 제품은 삽시간에 입소문이 펴져 판매가 급증하는 등 큰 파급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기업들은 소수의 마니아적 성향을 띠고 있는 얼리어답터보다 현실적이고, 신제품의 장'단점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는 헝그리어답터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슬로어답터'(Slow Adopter)도 각광받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흥분하고 남보다 먼저 써보는 얼리어답터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마니아 중심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제품과 서비스에 거리감을 느껴온 소비자가 보다 쉽고 단순함을 찾아 나서며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미혜(27'여) 씨는 오래전 구입한 슬라이드형 휴대전화를 아직까지 고집하고 있다. 이 씨는 휴대전화에 큰돈을 들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동영상, 카메라, 무선인터넷 등 기능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많이 사용하는 것은 통화와 문자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키패드가 닳아 글자가 희미하게 보이지만 당분간 바꿀 계획은 없다.

이 씨는 "최신형 휴대전화도 공짜폰이 많지만 지금 쓰는 휴대전화가 익숙하기 때문에 당분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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