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은퇴일기] 집의 무한 변신

아주 오래전 어느 시인의 글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단독주택에 사는 이 시인은 매일 아침이면 자신의 집 1층에서 2층으로 출근합니다. 거기서 글을 쓰고 저녁이면 퇴근해 1층으로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집안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땐 '역시 시인답군' 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 나니 그 시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았지요. 많은 시간 집에만 있다 보면 일과 일상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느슨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매일 규칙적으로 그렇게 했을듯합니다.

퇴직을 하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하루 종일 집이란 공간에 갇혀 있으면 나른하고 풀린 날들의 연속이기 쉽습니다. 일상만 있고 일이 없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근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는 한 화가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이용해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른바 하우스전시회입니다. 집 앞에는 예쁜 정원이 있어 가든파티를 할 수 있고 담벼락이 있어 그림을 멋지게 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슴아슴 노란 빛으로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열리고 있는 아파트전시회는 그 어떤 화랑의 전시회보다 멋졌습니다.

살고 있는 단독주택 한켠에 아예 갤러리를 지은 이도 있습니다. 풀꽃을 만지는 이 여성은 집안에 풀꽃 전문갤러리를 지어놓고 재미나 죽겠다며 호호 웃으면서 살고 있지요. 그는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평생직장까지 얻었다며 즐거워합니다.

어떤 이는 집에서 문학인 건축가 화가 등을 초청, 작은 강의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청도에 사는 한 지인은 집안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일 년에 몇 차례 영화감상이나 음악 감상회를 열어 낭만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닫힌 공간이 아니라 외부와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이 있는 집에다 자신의 꿈과 취미를 덧붙여 재미도 맛보고 이웃에게 즐거움도 나누어 주고 있지요.

일본에서는 집에 있는 책을 동네주민에게 빌려주고 같이 모여서 보는 것이 붐이라고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부터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요. 은퇴 후 생활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해줄 답이 어쩌면 집안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집의 변신, 생각만으로도 이미 흥미롭습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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