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본 문화도시 현장을 가다] (하)살아있는 도시 후쿠오카

'관광도시 후쿠오카' 만든 JR하카타 역사·캐널시티 두 명물

일본 후쿠오카 도시 속의 도시
일본 후쿠오카 도시 속의 도시 '캐널시티'와 만남의 광장.
JR하카타시티
JR하카타시티
캐널시티 외관.
캐널시티 외관.

도시의 생명력은 사람에서 나온다. 사람이 모여야 경제가 발전하고 도시가 살아 숨 쉰다. 일본 규슈 북쪽에 자리한 후쿠오카는 인구 150만 명, 면적 340㎢의 대구보다 작은 도시다. 하지만 작은 후쿠오카가 만들어내는 열기는 놀라울 정도로 뜨겁다. 매년 2천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몰려오며 세계 유명 일간지에서 후쿠오카를 살기 좋은 도시로 꼽고 있다.

후쿠오카의 생명력을 만드는 곳은 엉뚱하게도 쇼핑몰 캐널시티(Canal City)와 역사(驛舍) JR하카타시티다. 이 둘은 쇼핑몰과 역사이면서 동시에 복합문화공간이다. 풍부한 볼거리와 놀거리로 무장한 캐널시티와 JR하카타시티를 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후쿠오카를 찾고 있으며, 이는 후쿠오카 전체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도시 속의 도시

후쿠오카의 여느 쇼핑몰 중 하나인 캐널시티 앞에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후쿠오카 대표 관광명소, 도시 속의 도시, 일본 도시재생의 모범사례 등. 이러한 수식어는 캐널시티가 쇼핑몰에 적용되는 보통의 규칙을 과감히 깨버리면서 만들어졌다. 물건이 아닌 즐거움을 파는 곳, 캐널시티가 꿈꾸는 쇼핑몰이다.

캐널시티에서는 물건을 사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빈틈없이 늘어선 상점, 폐쇄적인 건물 구조는 찾아볼 수 없다. 3만5천㎡의 전체 부지 중 60%가 열린 공간이다. 쇼핑몰이 추구하는 짧고 효율적인 동선도 찾아볼 수 없다. 안내지도가 없으면 길을 잃기 쉬운 미로 같은 동선을 만들어 오랜 시간 머무르게 만든다. 그러나 긴 이동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곳곳에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가 넘쳐나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캐널시티는 로마 콜로세움과 같은 거대한 원형극장 형태로 구성됐다. 중앙을 가르는 길이 180m 운하를 중심으로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이 객석이 되어 둘러싸고 있다. 태양, 달, 별, 지구, 바다 등 5개 테마로 꾸며진 건물에는 쇼핑몰부터 호텔, 영화관, 극장, 사무실, 서점, 오락실, 식당 등이 담겨 있다. 건물 어디를 걷더라도 5층 높이까지 솟아오르는 분수쇼와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중앙무대가 보인다. 한쪽 벽면에는 180대의 TV모니터로 설치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의식주뿐만 아니라 산책하고, 즐기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가능하다. 캐널시티가 '도시 속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캐널시티의 성공이 단기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금의 캐널시티 일대는 50여 년 전 방적공장이 문을 닫고 떠난 자리였다. 한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이곳을 사들인 건 부동산개발업체 후쿠오카지쇼. 처음에는 상업시설용으로 매입했지만 주변 공업의 쇠퇴, 재개발지구 선정 등 주변 환경 변화와 쇼핑몰에 대한 발상의 전환 등으로 여러 차례 계획이 바뀌면서 기본 구상을 만드는 데만 16년이 걸렸다.

이케지리 마사치카(池尻雅親) 후쿠오카지쇼 법무부 차장은 "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사기 위한 방문에 만족하지 않는다. 캐널시티는 쇼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 요소와 볼거리를 통해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머무름을 만든 하카타역

역사는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장소다.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라 스쳐가는 공간이다. 이 때문에 역사에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볼거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3년 전 하카타역도 그랬다. 딱딱함이 느껴지는 역사에는 뜨내기 철도객이 대부분이었고, 역사 앞 광장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2011년 3월 'JR하카타시티'라는 이름의 복합환승센터로 다시 태어난 하카타역사 풍경은 사뭇 달라 보였다.

지하 3층, 지상 10층의 역사 내부는 하루를 꼬박 둘러봐도 다 보지 못할 만큼 꽉 찬 알맹이를 뽐냈다. 1층 복도를 따라 특산품 상점부터 서점, 편의점, 식당 등 각종 상점이 길게 늘어서 있고, 오른쪽에는 일본 최대 백화점으로 알려진 한큐백화점과 영화관 왼쪽에는 종합잡화점 도큐핸즈가 있다. 철도'지하철'고속버스'시내버스'택시 승차장과 연결된 통로와 고급식당이 늘어선 9~10층 복도에는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일루미네이션, 정원 조성으로 볼거리를 만들었다. 일본식 정원으로 꾸민 옥상정원에는 미니 기차, 미니 신사 등을 볼 수 있다.

역사 앞 광장은 '축제의 장'이었다. 역사는 지난달부터 시작된 '빛의 거리' 축제로 70만 개 전구로 반짝이고 있었다. 높이 14m의 전등탑을 중심으로 나무, 의자, 거리 등 구석구석이 빛의 물결로 일렁였으며, 우측에는 맥주, 와인 등을 마실 수 있는 야시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굳이 교통시설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김주야 (사)시간과 공간연구소 대표이사는 "역사는 장소와 장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체로 무미건조하다. JR하카타시티는 단순한 역사에 풍부한 체험요소를 담아 역사 주변뿐만 아니라 도심 전체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지역기업이 나서는 문화도시 만들기

후쿠오카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것은 지역기업이다. 시는 행정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지역기업은 주민을 끌어모아 건물과 거리에 문화를 입히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하카타 마을 만들기 협의회'와 '위러브텐진협의회'다. 기업'주민'행정'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협의회는 주변 교통 체제 정비, 깨끗하고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 지역 축제 유치 등을 일궈냈다. 또 하카타와 텐진 등 흩어져 있는 상권 간의 연결성을 만드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오지랖이 넓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역기업이 나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경제성이다. 건물이 차지하는 공간을 '점유'가 아닌 주민'관광객과 '공유'했을 때 가져오는 집객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 실제 캐널시티가 들어서면서 쇠퇴하고 있던 하카타 상권은 매년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이는 인근 상권에까지 번지고 있다.

히로미 소에지마(副島広巳) 후쿠오카 아시아 도시연구소 부이사장은 "마을 만들기와 같은 주민 참여 부분은 지역 기업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캐널시티와 하카타역 주변 환경 정비도 지역기업이 참여한 마을 만들기 협의회를 통해 이뤄졌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와 비교하면 대구 지역기업의 도심미관조성 참여도는 밑바닥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구지역 유통업체 사이에 지역 발전을 고민하기 위한 모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의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업체 간의 경쟁의식, 주민과의 의견 충돌 때문에 유통업체가 나서서 도심 미관 정비를 하기는 어렵다. 대구시나 구청에서 지역기업과 주민'행정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면 참여할 의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도현학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후쿠오카는 문화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은 물론 한 지역의 이미지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대구의 지역기업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고 했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있어 지금까지는 도시대학, 주민리더아카데미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참여 공간을 넓혔다면 앞으로는 지역 기업들도 문화도시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민과 함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일본 후쿠오카에서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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