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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앵두가 뒹굴면-김영남(19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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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뒤 숨어 있는 사연들

일러바칠 곳 없는 동네

우물가 집 뒤란의 누나 방에

굴러다니는 피임약이여, 그걸

영양제로 주워 먹고 건강한 오늘날이여

- 시선집 『가을 파로호에서』 문학과지성사, 2011.

올해는 유난히 봄꽃이 화사하다. 남쪽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던 꽃 소식이 급행열차라도 탄 듯 빠르게 북상하여 산하에 봄꽃이 지천이다. 동백,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꽃, 목련 이런 순서로 피던 꽃들이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핀다는 느낌이다.

꽃은 봄꽃이 화사하다. 봄에 피는 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잎도 없는 나뭇가지에 꽃만 화사하다. 마치 기다림에 지친 여인이 임이 온다는 소식에 옷도 제대로 차려입지 못하고 임 마중 가듯이 흐트러진 매무새다. 봄꽃은 바람난 여인이다.

머지않아 앵두가 열릴 것이다. 앵두는 붉은 자태로 하여 요염한 혹은 도발적인 여인에 비유되기도 한다. 앵두 같은 입술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앵두에서 젊은 여인의 이미지를 느낀다. 지금은 앵두나무가 있는 우물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우리의 옛 마을에는 마을마다 앵두나무가 있는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가에서 여인들은 그들만의 수다로 표현의 자유를 누렸다. 앵두나무 우물가가 소문의 진원지 구실을 했다. 화자는 어린 시절 앵두나무가 있는 우물가 집 누나 방에 뒹구는 피임약을 영양제로 알고 주워 먹은 에피소드를 통해 앵두의 이미지를 도발적인 수채화로 그리고 있다.

권서각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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