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눈맞춤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 영어 버전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Your eyes kissed mine.'(그대가 나와 눈맞춤하고)

나는 이 눈맞춤에 아픈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등교하자마자 민수가 씩씩거리며 나를 철봉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나는 잘못도 없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나오라면 나와. 쬐그만 게 말이 많아!

나는 겁에 질려 머뭇머뭇 철봉 앞으로 나갔다. 사이좋게 지내던 짝꿍이었는데 무슨 일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곧 이어 민수가 큰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너 우리 엄마 기생이라고 했다며?"

"기생? 너희 엄마 기생이야?"

민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주먹으로 나의 얼굴을 힘껏 갈겼다. 나는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아이들이 우리를 에워싸는 것이 보였다.

며칠 후, 담임선생님은 민수의 서울 전학을 알렸다. 철봉 사건 이후 내내 결석하다가 반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나는 철봉 옆에서 민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당시 나는 기생이라는 걸 영화배우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던 터라 민수가 화난 이유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너희 엄마는 정말 예쁘다고, 기생인 줄은 몰랐다고, 위로인지 해명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민수는 애써 내 눈을 피했다. 차갑게 등을 돌려 나를 지나쳐 가고 말았다.

어른이 되어 나는 한 외국인으로부터 눈맞춤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한국인은 왜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안 보지요?"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보내는 거예요."

"그럼 건배를 할 때는 왜 상대편의 눈을 안 보고 술잔을 보나요?"

"나를 낮추기 위해 술잔의 높이를 조절하다보니 잔을 보게 되지 않나 싶네요."

"오호! 이렇게, 이렇게 말이지요?"

술잔을 짓궂게 맞대며 높이를 낮추는 것을 보다가 오래 전 애써 내 눈을 피하던 민수가 생각났다. "너한테 제일 창피했어. "어렵게 뱉은 민수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엄마가 기생이었든 아니었든 아이들한테 무슨 상관이 있었으랴. 그러나 민수에게는 그것이 씻을 수 없는 수치요, 상처였던 모양이었다. 나 또한 아픔이었음을 그 아이는 알까.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지지율 열세를 겪고 있는 국민의힘에서 내부 분열이 심화되고 있으며, 특히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과 대장동 사건 국정조사 요구 속에 당의 단합이 요...
정부는 원·달러 환율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과 650억달러 규모의 외환 스와프 거래를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기금운...
과잉 진료 논란이 이어져온 도수치료가 내년부터 관리급여로 지정되어 건강보험 체계에 편입될 예정이며, 이에 대해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50대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