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뜻이 아니나, 공직자를 가리키는 낱말이 많다. 복지부동(伏地不動), 무사안일(無事安逸), 철밥통과 같은 것들이다. 당연히 비하하는 말이지만 너무 흔히 쓰이다 보니 이젠 비하보다는 그냥 평범한 일반명사처럼 느껴진다.
자주 쓰이진 않지만 이와 비슷한 말은 더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서(漢書)에 나오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이다. 시(尸)는 시동(尸童)으로 제사 때 신을 대신해 앉아 있는 아이를 말한다. 이 아이가 하는 일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제사가 끝나면 공짜밥(素餐)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시위소찬은 아무런 공도 없이 녹만 먹는 것을 비유한다.
이 사자성어를 인용한 문장을 보면, 지금 조정 대신은 위로는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유익하게 못 하니 모두 공 없이 녹만 받는다고 돼 있다. 2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직자의 행태는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 고대 전설을 모은 책인 습유기(拾遺記)에는 행시주육(行尸走肉)이라는 말이 나온다. 노산 이은상의 수필 제목이기도 한 이 낱말은 걸어다니는 시체와 뛰어다니는 살덩어리라는 뜻으로 배움이 천박해 쓸모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한다.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로 쓴 것이지만, 이 낱말을 슬그머니 복지부동, 무사안일 옆에 끼워 넣어도 괜찮을 듯하다. 정말 성실하게 일하는 공직자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이런 말이 오히려 과분할 정도인 공직자가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최근 대법원은 금품을 받아 서울시로부터 직급 강등 처분을 받은 4급 공무원이 낸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공무원의 손을 들어줬다. 업무 연관성과 관계없이 1천원만 받아도 처벌한다는 이른바 '박원순법'이 부당하다고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 소송의 결과는 대법원뿐 아니라 1심과 항소심에서도 똑같이 나왔다. 판결의 근거도 비슷하다. 수동적으로 받았고, 공직자 가운데 100만원 미만의 금액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등된 다른 사례가 없으며, 사회 통념과도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회를 청렴하게 만들기란 어렵다. 대통령부터 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청렴을 외치지만 말뿐이다. 말에 걸맞은 실천은 없고 의지는 더욱 없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청렴을 강제하려 하면 경찰이나 검찰이 막고, 이를 넘어서면 법원이 막는다. 복지부동, 무사안일, 시위소찬도 좋으니 돈 받는 공직자만이라도 없으면 좋겠다고 바라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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