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8개 고교 800명 학생 줄지어 독재 항거 재현

옛 교복·학생모 쓰고 거리 행진…시민들 박수 치며 뜨겁게 환영

지난달 28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정부 주관 2'28민주운동 기념식에서 당시 상황을 재현한 뮤지컬 배우들이 '정의를 세우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지난달 28일 오후 1시 대구 중구 중앙로. 목깃이 없는 옛 교복과 학생모를 쓴 고교생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줄지어 섰다.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2'28 계승하여 민주주의 밝혀라' 등이 쓰인 현수막과 손팻말을 든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맞서 일어난 2'28민주운동 당시 고교생들의 시위 행렬이 고스란히 재현됐다.

이날 행렬에는 경북고와 대구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사대부고,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 대구농고(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 대구공고 등 당시 2'28민주운동에 참가한 지역 8개 학교 800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기념식이 열린 대구콘서트하우스를 출발해 2'28기념중앙공원까지 1㎞가량을 행진하며 2'28민주운동의 정신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시민들의 시선에 쭈뼛대던 청소년들도 행진이 시작되자 자못 비장한 얼굴로 변했다.

"백만 학도여! 중앙통(중앙로의 옛 이름)으로 나가자!" "민주주의의 불을 밝히자"라고 외치는 학생들은 마치 58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행진 도중 경북여고 학생들이 큰 함성을 지르자 경북고와 대구고 학생들도 질 수 없다는 듯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부슬비가 내렸지만 선두에 선 각 학교 대표들이 들고 있는 '민주주의의 횃불'은 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관심으로 학생들의 행진을 환영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박수를 치거나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2'28민주운동에 참여했다는 예종만(77) 씨는 "서서히 잊혀간다고 생각했는데, 국가기념일이 됐고 학생들이 당시 행진을 재현해 주니 정말 기분이 좋고 흐뭇하다"고 했다. 타고 가던 자전거를 세우고 흐뭇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정창근(61) 씨는 "2'28민주운동은 대구의 정신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초석이 된 사건인데 이제라도 크게 행사를 벌이니 행복하다"고 했다. 40여 분의 행진을 마치고 2'28기념중앙공원에 도착한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횃불'을 점화하며 힘차게 구호를 제창했다. 김승수 대구시 행정부시장은 "58년 전 선배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 좋았다"며 "학생들을 비롯해 모두가 2'28민주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