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글항아리 펴냄
이케아, H&M, 칼스버그, 레고, 볼보, 일렉트로룩스, 무민…. 어느새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북유럽 브랜드다. 또 느리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휘게 라이프'(Hygge Life)와 함께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유럽 스타일 가구, 북유럽식 인테리어, 북유럽식 교육, 북유럽식 복지까지. 저출산, 사교육, 양성평등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대안을 찾는 곳도 북유럽이다. 이대로라면 북유럽은 유토피아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흠 잡을 게 없을까.
◆한 겹 벗겨 내고 본 북유럽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북유럽 예찬론에서 벗어나겠다는 한 영국인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10년 넘게 돌아보고 쓴 책이다. 영국 언론인 마이클 부스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는 북유럽의 '사소한' 결함을 찾아 5개국을 탐방했다. 덴마크 출신 부인 덕에 덴마크가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는 그의 삐딱한 시선은 북유럽 상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시작부터 흥미롭다. 4월의 어느 새벽, 코펜하겐 집에서 담요를 두른 채 신문을 읽던 그는 '덴마크, 삶의 만족도 1위'라는 머리기사를 보고 코웃음을 친다. 축축하고 따분하고 생기 없는 나라, 지갑 열기가 무서울 정도로 비싼 물건을 불친절하게 파는 상점, 폭탄 같은 세금고지서가 떠오르는 덴마크는 2012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 번이 아니라 1973년부터 내내 1위였다. 핀란드 2위, 노르웨이 3위, 스웨덴 7위, UN 인간개발지수에서는 노르웨이가 1위를 차지했고, '뉴스위크'는 핀란드를 1위로 꼽았다. 스웨덴은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데 저자는 갸우뚱한다. 엎치락뒤치락 순위 다툼을 하는 곳에 왜 사람들이 살러 오지 않는지, 왜 유럽인들은 스페인이나 프랑스에 집을 사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졌다.
간과했던 모습이 드러났다. 밝게 채색된 스칸디나비아 환상을 들여다보니 그늘도 있다. 덴마크는 소득의 72%를 직간접세로 내고, 암 발병률이 세계 1위인 국가다. 북유럽 국가 가운데 평균수명이 가장 짧고, 알코올 소비량은 가장 많다. 일을 하지 않으려는 '나태 지수'는 OECD 국가 중 2위다. 복지제도가 너무 잘 갖춰진 탓이다. 끊임없이 늘어놓는 변명은 그들의 생산성을 떨어트린다. 상점 간판은 단출하다. 미용실은 '헤어', 베이커리는 '빵'이라고 써놓은 게 전부다.
핀란드는 서유럽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고, 총기 소지율은 세계 3위다.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항정신제, 인슐린, 항우울제다. 핀란드인은 과묵하다. 북유럽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말이 없기로 유명하다. 예컨대 애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묵묵히 고장 난 세탁기를 고쳐주는 식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고 대화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이 탓에 말 많은 사람을 불신한다. 이곳 사람들은 상대가 5분 이상 이야기하면 무언가 숨기려는 것으로 의심한다.
북해에서 발견된 석유로 부자가 된 노르웨이는 생산인구의 3분의 1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정부보조금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노르웨이인을 빈정거리는 스웨덴인의 태도가 이해된다. 그런 노르웨이인의 문해력, 수학'과학 실력은 유럽 평균을 밑돌고 10년간 악화했다.
스웨덴인, 특히 스웨덴 남성은 남성적이지 않다. 스웨덴인에게서 섹시하거나 예술적인 면을 찾기도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연인에게 칭찬하지도, 밥을 사지도 않는 스웨덴 남성은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다 보니 남녀관계도 개인주의 극치를 달린다.
아이슬란드는 모범적인 북유럽 국가의 이미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하다. 과도한 무절제 때문이다. 위스키 한 병에 8천달러를 써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슬란드인이라고 한다.
◆결국엔 북유럽
저자는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북유럽의 실상을 소개하겠다면서 시민은 물론 역사학자, 인류학자, 언론인, 예술가, 정치인, 철학자, 과학자, 심지어 요정연구가, 산타클로스까지 만나봤다. 그리고는 낙천적이고 여유 있는 삶을 말하는 '휘게'가 광범위한 사회적 억압의 산물이 아닌지 묻는다. 튀지 않고, 진지한 토론과 반성을 하지 않는 대신 순응하는 삶의 방식이 숨 막히는 사회문화적 분위기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장 활발한 사회 같지만, 속내는 일손 부족이라는 지적도 내놓는다. 출산'육아 논쟁에서 우리와 반대인 점은 여성을 부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국민성으로 포장해 내놓은 그의 분석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0% 맞지도 않다. 덴마크인은 사교적이다. 평소 연락하는 친구가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또 타인을 잘 믿는다. 타인에 대한 높은 신뢰 수준은 그들의 행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핀란드인은 과묵한 대신 믿을 만하다. 세계에서 1인당 책 구매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아이슬란드다.
여전히 북유럽은 매력적이고, 그곳 사람들에게서 고쳐야 할 점보다는 배워야 할 점이 더 많다.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 돈을 쓰는 방법, 일과 삶의 균형, 효과적인 교육제도, 협동,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까지 샘날 정도로 넉넉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결국, 저자의 결론도 '그럼에도 지상낙원'이다.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Work&Life Balance), '욜로'(YOLO) 열풍이 불었다. 이런 트렌드는 단순하고 느긋하게 일상을 즐기려는 북유럽식 생활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삶의 자율성, 튼튼한 사회안전망,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들의 겉만 닮을 것이 아니라, 민낯부터 살펴봐야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552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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