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하빈의 시와 함께] 숟가락 소리

#숟가락 소리

이진엽(1956~ )

밥사발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풍경 소리보다 더 맑고 청청하다

저 소리 나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고

기쁨과 슬픔도 다북쑥처럼 엉켜 있다

하루에도 세 번씩

이승 멀리 번져 가는 쾌청한 울림들

목탁 치는 소리가 어찌 절집에만 있으랴

삶은 어지러워도

밥을 먹는 순간만은 사문沙門*의 몸짓으로

그저 순하게 하루의 업을 닦는다

아,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밥사발에 숟가락 부딪치는 그 소리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

―시집 『겨울 카프카』 (시학,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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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사발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풍경 소리나 목탁 소리보다 더 맑고 깨끗하다는 말! 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에 사람살이의 희비가 다북쑥처럼 엉켜 있다는 말! 그렇다면, 끼니때마다 숟가락질하는 것은 단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갈마드는 인생의 애환을 달래고 삼키려는 심사가 깃든 것 아닌가? 한편, 밥그릇을 말끔히 비우는 일은 마치 수행하듯 "그저 순하게 하루의 업을 닦는" 거룩한 행위로 여겨질 수밖에.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했던가? 논물 끌어대고 애써 농사지어 가족 밥상에 쌀밥을 고봉으로 올렸으니 그 얼마나 흐뭇하고 보람되랴! 더욱이 가족들과 식탁에 단란히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숟가락 부딪치는, 공중의 소리 청청히 울려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참으로 복되고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문학의 집 '다락헌'에 혼자 머무르며 삼시 세 끼 밥때를 챙기다 보면, "아,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밥사발에 숟가락 부딪치는 그 소리"가 절로 사무치게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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