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욱,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김정희』, 아이세움, 2007.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은 외국 편과 한국 편으로 나누어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한국 편은 김홍도, 이중섭, 장승업, 정선. 다섯 번째로 추사 김정희 선생을 소개했다. 미술가들을 다룬 책에 '조선의 글씨를 천하에 세운 인물 김정희'라고 소개한 것이 뜨악하다. 글씨가 아니더라도 나 등 적지 않은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제목을 '조선의 글씨를 세운 김정희'라고 했을까.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이란 글씨에서 그 의문을 풀 수 있다. 그 글씨는, 그림이 곧 글씨고 글씨가 곧 그림임을 보여준다. "김정희에게 글씨와 그림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림을 그릴 때도 글씨를 쓰듯이 그렸고, 글씨를 쓸 때도 그림을 보듯 시각적인 효과를 충분히 한 후에 붓을 들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선생의 그림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한다.
'세한도'는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죄인으로 제주도에 유배된 자신의 처지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권력을 누릴 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하니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겨울의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제자 이상적이다. 그는 역관으로 중국을 갈 때마다 선생이 부탁한 책을 구해다 준다. 조선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만학집', '대운산방문고', '황조경세문편' 등을 기꺼이 구해주었으니 선생으로서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 고마운 마음을 편지로 쓰다가 영감이 떠올라 그린 것이 세한도다.
'세한도' 우측에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고 적혀 있다. 우선은 이상적의 호로 '우선, 먼저 이것을 감상해 보라'는 뜻이다. 그림 속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있고 집이 한 채 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공자의 말을 편지에 인용하다 추운 바람 속에 서 있는 자신의 처지를 늙은 소나무에, 어린 소나무는 이상적의 마음을, 황량하고 쓸쓸한 처지를 집 한 채에 담았음이다.
이상적은 선생으로부터 받은 세한도를 중국으로 가져가 중국 학자들의 시와 조선 학자들의 시를 덧붙이는데 그 길이가 1천388센티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그림이다. 선생의 그림을 말할 때 '세한도'뿐만 아니라 '불이선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과천에 살 때 그의 곁에서 공부하며 시중을 들던 달준이를 위해 그려준 것으로 '난맹첩' 이후 20년 만의 작품으로 글씨와 그림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추구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선생의 생활 태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열 개의 벼루와 천 개의 붓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따뜻한 봄날이다. 책이랑을 걸어 나와 옥산서원, 은해사, 백흥암으로 떠나자. 그곳에 가면 추사 선생의 그림은 아니더라도 기품 있는 글씨를 만나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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