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매년 근무지를 이동했다. 그런데 환자 중에 제가 이동할 때마다 제 진료실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받은 분이 있었다. 사실 그는 당뇨에 고혈압과 양성종양까지 가지고 있는 분이라 상급병원에서 진료받길 권유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며 매월 나에게 처방을 받아가 결국 3년간 보게 됐다. 그에게 이번 달이 마지막 처방이 될 것 같다고 이별을 고하자 서운한 듯 '그동안 고마웠고, 이제는 큰 병원에서 관리받겠다'고 하는 그 환자의 말을 들으니 정말 내 업무가 마무리되어가는구나 싶었다.
이번 달을 끝으로 공중보건의의 임무를 마치게 된다. 3년이라는 대체 복무기간이 처음 시작할 때는 막막함뿐이었는데 어느새 끝에 와있다. 정확히 3년 전 4월부터 대구 인근 도시에 배치된 후 지금까지, 지역 보건사업에 이바지하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3년 동안 어림잡아 3만여 명의 환자를 대면했다. 그중에는 폐 방사선 사진검사에서 비정상 부위가 보여 인근 대학병원으로 진료 의뢰를 했더니 폐암이었다는 환자도 있었고, 팔에 힘이 빠진다 하여 얼른 인근 병원 응급실로 전원시켜 뇌졸중을 막을 수 있었던 환자도 있었다. 또 지역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여러 차례 강의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 전국을 강타했을 때는 특별근무 등의 의료 지원을 나가기도 했다.
공중보건의 생활을 한 지 2년째가 되어갈 때쯤, 나의 생활에는 큰 활력이 없었다. 파고 없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왠지 나의 인생을 갉아먹는 듯한 기분마저 들면서 지연된 인생 과제들이 큰 무게로 다가왔다. 나의 유유자적한 태도와 안이한 삶의 방식에 다시 채찍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로드맵을 재정비하고 작은 목표들을 세워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농아 환자들을 위해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병원일로 자주 방문하게 된 중국에서 좀 더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그렇게 싫어하던 한자 공부도 시작했다. 어느 학자가 그랬던가, 생의 마지막까지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목표'라고. 그렇게 나의 생활에는 다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두달 여 전 '매일춘추' 연재를 시작하며 '처음'이라는 주제로 글을 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느덧 석 달째가 되어 마지막 글을 쓰고 있다. 연재를 끝내면서 공중보건의 복무도 마무리 되어간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소중한 경험과 인연들이 많았으니 어찌 이 기간을 부족하다고 말하랴. 이 기간의 기억들은 앞으로 펼쳐질 의사로서의 내 삶에 편히 기댈 수 있는 정원처럼 될 것 같다. 보건소로 출근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마지막 퍼즐을 무엇으로 마무리 지을지 고뇌하는 하루하루가 되지 않을까. 봄 햇살이 따스하다. 오늘은 근무를 마치고 동네 한 바퀴 걸으며 어르신들께 인사라도 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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