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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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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젖어든다

박소유(1961~ )

앞집 새댁이 몸 풀자

동네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아기를 재워놓고 그 틈에 와 수다 떨다가

젖이 돈다고, 아기가 깼을 거라고

한 걸음에 달려간다

하늘색 원피스에 구름 번진다

저릿하게 몸이 젖어드는

어떤 잡음도 끼어 들 틈이 없는 완벽한 일치다

자동으로 주파수가 맞춰져 있는 거다

우리 동네는 지금 수유 중이다

뿌리에서부터 올라온 젖을 먹이느라

아른아른 실핏줄 돋아나는 젖통은 한껏 부푼다

먹어도 먹어도 금방 고여 출출 넘치는 수액으로

젖나무 새순은 숨이 가쁘다

조그만 입에 젖을 밀어 넣던 그 순간이 다시 와

온몸 젖어드는데

젖나무 아래, 한 세상이 두근거리는 봄날이다

―시집 『어두워서 좋은 지금』 (천년의 시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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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주라고 불리는 인간의 몸은 천지 우주의 축소판이다. 하늘을 닮아 머리는 둥글고, 땅을 닮아 두 발은 평평하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얼굴엔 빛나는 두 눈이 있고, 땅에 강물이 있듯이 몸속엔 흐르는 핏줄이 있다. 이처럼 천지 우주를 닮은 인간은 우주와 영감이나 생명의 기운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몸 풀자, 젖이 돌고, 젖통이 부풀고, 숨이 가쁘고, 온몸이 젖고, 한 세상이 두근거리는 그런 봄날을 인간[1연]과 자연[2연]이 함께 맞고 있다. 인간세상과 산천초목에 하늘과 땅의 기운이 뻗쳐 생명이 약동하는 것은 우주와의 주파수가 자동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 마치 엄마와 아기의 텔레파시처럼! 그러니 앞집 새댁이 몸 풀자 동네가 날아갈 듯 가벼워질 수도, 젖이 돌자 하늘색 원피스에 구름이 번질 수도 있을 터. '젖이 돈다'는 건 '젖어든다'는 것! 이는 곧, 천지의 기운에 따라 생체 리듬의 변화가 자연스레 일어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래서 시인은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자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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