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화로 인한 간이식 수술을 앞둔 이정미(가명·48) 씨의 얼굴에는 황달기가 뚜렷하게 보였다. 안색이 안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지적에 지난달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간경화가 너무 심해 이식수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복수가 차고 식은땀이 나고 늘 많이 피곤하다. 이번 주에 간을 이식해 줄 딸 안미지(가명·24) 씨는 지난달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아 복대를 찬 채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었다.
◆남편 사망 후 가족들에게 연이어 찾아온 병마
간경화가 찾아오기 전에도 이 씨의 삶은 오랫동안 힘겨웠다. 19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이후부터 아홉 살, 네 살이었던 두 남매 등 가족의 생계는 고스란히 이 씨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아이들이 많이 어렸고 크게 모아둔 돈도 없이 당장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 휴무도 주말도 없이 식당 서빙이나 주방 설거지 등 가리지 않고 매일 14시간 이상 일을 했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부지런히 일하며 아이들을 키웠지만 시련은 그치지 않았다. 7년 전부터 이 씨에게 뇌전증이 생기면서 월 2, 3회 정도 간헐적으로 발작이 찾아왔고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시기 아들 안재현(가명·28) 씨도 조현병 증상이 생겨 그때부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여전히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
막내딸 안 씨는 집안 형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체육 전문 중·고등학교에 진학해 역도를 했다. 안 씨는 "운동도 너무 고됐고 5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1년에 서너 번 집에 오는 생활이 힘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가족 생각만 하면서 악착같이 버텼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운동한 만큼 성적도 좋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매년 전국대회에서 1, 2위의 성적을 내곤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운동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길 무렵 격한 운동을 무리하게 해 온 탓인지 허리디스크가 생겼고 그대로 꿈을 접었다.
◆ 허리디스크 안고 가족들 부양해온 딸 "어머니 잘 모시고 싶어"
꿈을 접었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안 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5년간 해왔던 운동을 그만두니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놓았던 공부에 집중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필름 제조 공장에 취업했다"고 했다.
운동을 그만뒀지만 허리디스크는 여전히 안 씨를 괴롭혔다. 12시간씩 서서 일하는 공장 일을 버티지 못하고 1년여 만에 그만뒀다. 이후로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조선소에서 용접 보조 일을 하는 등 쉬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했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일을 하는 사이 허리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밤에 잠을 못 자고 울 정도였다. 안 씨는 "허리가 다 찢어지는 것같이 아팠다. 병원에서도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는데 수술비가 너무 비싸 진통제를 강한 걸로 달라고 해서 버티고 일하곤 했다"고 했다.
올해 초부터는 통증이 너무 심해지고 새끼발가락 감각이 없어졌다. 더 미룰 경우 왼쪽 다리에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해 주변에서 500만원을 빌려 지난 3월 수술을 받았다.
아직 본인 몸도 추스르기 전이지만 어머니를 위해 간이식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망설임은 없었다. "오빠가 이식을 해드리려고 했지만 병 때문에 못 한다고 했다. 오빠가 어머니를 안고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 죄송하다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라도 이식 수술을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다.
문제는 4천만원에 가까운 비용이다. 월 80만원 수준의 기초생활수급비 말고는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안 씨는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못했지만 어머니의 과분한 사랑 안에 자라왔고 이제는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고 싶다.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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