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소유욕'은 엄연히 다르다. 2017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데이트 폭력 사범은 1만303명을 기록해 전년보다 19%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제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여성의 손목을 낚아채어 끌고 가는 남자의 모습은 '로맨틱한 박력'이 아니라 '폭력'으로 인식해야 하는 시점이다.
100년 전에도 낯선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성을 따라다니는 일이 있었다. 1925년 흥미로운 기사를 따라가 보자. 제목은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연서를 받던 때'라는 글이다. 기획 기사로 다루어진 이 기사는 다소 로맨틱한 제목과는 달리 데이트 폭력이 그때에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 받은 연서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처음에는 가지각색의 미문을 늘어놓은 것이지마는 차차 도수가 늘어갈수록 위협하는 태도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나의 간절한 사랑을 아니 들어주면 자살을 하겠다는 둥, 날마다 그대의 뒤를 따라다니고 다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고 말겠다는 둥 별별 위협하는 소리가 다 쓰여 있으며 심지어 그대하고 나하고는 아무 때 아무 때에서 이러한 관계를 맺었는데 어쩌면 그것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모른 체하느냐 하는 엉터리 없는 소리를 쓴 엽서를 학교로 보내는 일까지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이런 종류의 편지가 오가게 된 것은 10년 전, 즉 1915년쯤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집 안에 꼭 들어앉았던 여자들이 처음으로 나와 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그 시절이고, 그때 그러한 일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엽서를 보냈을까. 기자는 세 가지 종류로 발신인을 추측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학교 물이나 좀 먹은 부랑자들, 두 번째는 무식하고 못난 남자들, 호기심어린 중학생들이다. 화류계 여자들에게 싫증이 나서 여학생 첩이나 하나 얻으려고 하는 남자도 그중 하나라고 한다.
이런 글을 받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세상 남자들이 흔히 말하기를 여자란 마음이 약해 자꾸 따라다니고 매달리면 대개 다 넘어가는 것이라고 한다"고 지적한다. 데이트 폭력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생각이 1920년대에도 존재했다. 100년 전에도 여자의 노(NO)는 진짜 '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기사의 마무리가 재미있다. "그 편지를 쭉쭉 찢어서 불살라버리라"고, 맥 빠지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불사를 것은 편지만이 아니다. '자꾸 따라다니고 매달리면 여자는 다 넘어가는 것'이라는 남성들의 잘못된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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