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대구경북 정치인들 '낄끼빠빠' 할 줄 알아

유광준 서울 정경부 기자
유광준 서울 정경부 기자

언제부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말 줄임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버카충'은 '버스카드 충전'을 압축한 신조어다. '낄끼빠빠'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낄끼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란 의미이다. 주어진 상황 그리고 자신의 처지, 본분, 분수에 맞게 처신하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일부 대구경북 정치인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듯하다.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대구 동을'4선)는 낄 때 끼지 못 하고 빠진 사례다. 그는 한동안 대구경북을 대표할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주목받았다. 그가 보수진영의 강도 높은 혁신과 개혁을 주장할 때 고개를 끄덕인 지지자 상당수는 대구 출신 정치인의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 각오에 높은 점수를 줘왔다.

그런데 유 전 대표는 6·13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가 초토화(기초의원 1명 당선)되고, 자신이 영입한 대구시장 후보가 득표율 6.5%의 부진을 보였음에도 '고향'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대구경북에 대한 유 전 대표의 침묵은 직무유기이다.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동갑)은 낄 때가 아닌데 낀 경우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는 지난 15일 동료 초선의원 4명과 함께 '지난 10년 간 보수정치를 실패한 책임을 묻겠다'며 당내 중진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당장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적반하장이란 비아냥이 나왔다. '공천 학살' 논란이 일었던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전력 탓이다. 특히 지난 총선 과정에선 '진실한 친박들만 모였다'는 자리에 참석해 지지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고 고향(경주)과 대구 출마를 두고 갈팡질팡하다 친박 공천 후광을 등에 업고 대구에 공천을 받았다. 탄핵 정국에선 침묵했고, 헌법전문가이면서도 지방분권형 개헌에는 회의적이었다.

정치권에선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마지막 막말'이라며 언급한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친박 행세로 국회의원 공천받거나 수차례 하고도 중립 행세하는 뻔뻔한 사람' 등이 정 의원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진박 인증하던 정종섭, 보수 궤멸의 진짜 책임자인 그대부터 그만 두시라'고 일갈했다.

강효상 한국당 의원(비례, 대구 달서병 당협위원장)은 당연히 낄 때이지만 전력을 다해 벗어나려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홍준표 전 대표에게 여론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제대로 보좌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강 의원은 홍 대표가 대선주자로 떠오르기 전부터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가 당권을 잡자 대변인과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비례대표 의원들이 가장 원하는 지역구, 그것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보수 텃밭의 한 가운데를 지역구로 받았다.

하지만 이제 강 의원은 홍 대표와 자신이 함께 언급되는 것을 피한다. 책임론의 '책' 자라도 나올라치면 '홍 대표가 어디 남의 말 듣는 사람입니까!'로 응수한다. 나아가 과거보단 보수의 미래를 얘기하자는 '세련된(?)' 방법까지 동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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