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7월 13일 미 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이 '경성경제전문, 경성법학전문, 경성의학전문, 경성사범 등을 합쳐 국립 서울대를 신설한다'는 '국대안'(국립 서울대안)을 발표하고, 8월 22일 서울대학 설치령을 공포하자 전국에서 반대시위, 동맹휴학이 확산됐다.
좌익은 '국대안이 고등교육을 축소시키고 미국인을 총장으로 기용함으로써 운영 자치권을 박탈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대학은 물론 중학교까지 57개교 4만여 학생들이 동맹 휴학에 참여했다. 미 군정은 4천956명을 제적하고, 전체 교수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380명을 해임했다. 1947년 5월 국대안 수정 발표로 분위기가 진정됐고, 미 군정은 제적생 대부분을 복학시켜 파동을 마무리 지었다.
조두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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