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영풍제련소와 노란 가운

임상준 경북부 차장
임상준 경북부 차장

그리스신화에서 남편을 뺏긴 마녀 메디아는 신부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메디아는 그녀에게 '노란 독(毒) 가운'을 선물하는 데 가운을 입은 신부는 골격(骨格)이 틀어지며 고통스럽게 죽는다. 일종의 독살인 셈이다.

인공적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란색을 흔히 '카드뮴 옐로'라 부른다. 인체에 치명적 중금속인 카드뮴은 물에 녹아 있을 때는 코발트색이다. 이를 화학 처리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카드뮴이 도금을 거치면 메디아가 살인 도구로 썼던 노란 가운처럼 황홀한 노랑(카드뮴 옐로)이 된다.

최근 경북에서 잊혔던 '카드뮴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아연을 제련하는 경북 봉화 영풍석포제련소가 주변 토양과 낙동강을 카드뮴 등으로 오염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어서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지난 4월 제련소 인근 토양 오염 조사를 실시한 결과 카드뮴이 기준치의 179배나 넘게 검출됐다. 이들은 48년간 영풍이 1천300만 영남인의 식수원과 인근 토양을 중금속으로 오염시켜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낙동강을 식수로 하는 대구는 물론 부산까지 '아연실색'하고 있다. 제련소가 위치하는 봉화군 석포리는 낙동강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인 탓이다. 세 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윗물(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격언이 여든 할아버지까지 몸서리치게 만든다.

제련소와 카드뮴 키워드가 맞물리면서 '이타이이타이병'까지 회자하고 있다.

1968년 일본 도야마현의 강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뼈마디가 풀리고 금이 가는 병에 걸렸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통증이 너무 심해 '아프다'는 말을 반복했고 병명도 '이타이이타이(일본어로 아프다는 뜻)병'으로 불렀다. 후에 한 젊은 의사가 병의 원인을 카드뮴 중독에서 찾아냈다.

영풍이 낙동강 최상류인 봉화군에 아연제련소를 세웠을 때(1970년)는 일본 열도가 카드뮴 공포로 들끓을 때와 맞물린다. 당시는 일본이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으로 아연제련소가 내뿜은 카드뮴을 지목, 아연공장을 대거 퇴출하던 시기다. 과거 봉화 주민이 이 병에 걸렸다는 확인되지 않은 괴담이 아직까지 떠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경단체가 오버를 했든 안했든, 카드뮴이 있건 없건 간에 분명한 사실은 시도민들이 식수 불안에 떨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반세기 가까이 영풍석포제련소가 환경문제에 대해선 '무풍지대'였다는 사실이다. 제련소는 수십 년간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비밀스럽게 영업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인간은 은밀하고 비밀스러울 때 불안함을 느낀다. 심지어 제련소는 지난 2월 기준치를 초과한 폐수 70여t을 인근 하천으로 내보내다 들켜 불안을 키우기도 했다.

영풍석포제련소는 이제라도 공장 문을 활짝 열어 젖혀야 한다. 짜인 각본대로 보여주는 공장 개방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환경단체와 지도 감독 기관이 드나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공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방류시스템과 같은 선진 환경 정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은밀함이 불러온 불신의 원죄는 오로지 제련소에 있기 때문이다. 제련소가 묵은 불신을 씻는 정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언제 낙동강의 '노란 가운 복수극'이 펼쳐질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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