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1982년 봄, 보스턴대학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수여식 참석차 20여 년 만에 미국을 찾았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는 20여 년 전 미국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일본의 철강·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었고, 미국 생산 설비를 도입했던 일본은 미국 반도체 시장도 침식하고 있었다. 미국은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최강 미국이 흔들리는 장면을 목격한 호암의 당시 고백이다.
호암은 1980년 봄 일본 방문 때 들은 얘기가 새삼 떠올랐다. 1973년 오일쇼크를 겪은 직후 일본은 제철·조선·화학·섬유 등 기존 기간산업 비중을 줄이고 반도체와 광통신신소재 등 첨단기술 분야로의 전환을 시도,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설명이었다.
호암은 미국 방문을 통해 결심했다. 전통산업에 치우쳐 있는 삼성의 새판을 짜야 한다고. 그리고 바로 다음 해인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 사업을 키우겠다"며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이른바 28 도쿄 선언. 호암이 만 73세에 내린 결단이었다.
한국CCO(최고소통책임자)클럽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주요 국책민간연구소 11곳의 CEO를 대상으로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인가?'라고 최근 물었더니 1위가 호암의 2·8 도쿄 선언이었다.
컬러 TV 생산도 막 시작했던 시절, 최첨단 산업인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한 호암의 당찬 도전은 경제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한국경제 대박사건'으로 규정하듯 35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을 만들어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우리나라 누적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인데 그 수출 증가세를 반도체가 이끌었다. 지난달에만 전체 수출액의 20%가 반도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입국장 면세점 도입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혁신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미 FTA 체결과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의 정책을 통해 혁신을 보여줬다.
호암의 반도체처럼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먼 훗날, 모든 이들이 '대박사건'으로 기억하는 업적이 문재인 정부에서도 나와야 한다. 문 대통령이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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