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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빈의 시와 함께] 눈물/송재학(1955~ )

장하빈 시인
장하빈 시인

눈물이 말라버렸다 너무 오래 눈물을 사용했다 물푸레나무 저수지의 바닥이 간당간당, 물푸레나뭇잎도 건조하다 일생의 눈물 양이 일정하다면 이제부터 울음은 눈물 없는 외톨이가 아니겠는가 외할머니 상가에서도 내 울음은 소리만 있었다 어린 날 울긋불긋 금호장터에서 외할머니 손을 놓치고 엄청 울었다 그 울음이 오십 년쯤 장기저축되어 지금 외할머니 주검에 미리 헌정된 것을 이제야 알겠다 그 잔나비 울음이야 얼마나 맑으랴 내 어린 날의 절명 눈물이었으니

―시집 '내간체를 얻다'(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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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 날 금호장터에서 외할머니 손을 놓치고 길 잃은 고아가 되어 터져나온 그 울음으로 장터거리가 떠나가겠다. 눈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이 마치 잔나비 궁둥짝 같았겠다. 퍼질러 앉은 장바닥이 온통 눈물의 웅덩이로 변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

'눈물'은 인간의 칠정(七情), 곧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결정체일 터. 안타깝게도 어린 날에 '눈물'을 죄다 탕진해 버린 시적 화자는 생의 일곱 빛깔 무지개를 고스란히 잃어버린 채, 거칠고 메마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으리라. 빈껍데기 울음만 있으되 슬픔을 정화시켜 줄 눈물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따라서 '눈물'을 동반하지 않은 외톨이 울음이야말로 피상적이고 가식적인 슬픔으로 언뜻 비쳐지지만, 갈라터진 생의 바닥이 간단간당 드러나는 본질적이고 극한적인 슬픔의 징표가 아니랴?

다시 출렁이는 눈물의 저수지, 물푸레나무의 푸르싱싱한 시절이여 돌아오라! 그 옛날 금호장터 엇누비며 그 맑디맑은 잔나비 울음으로 장터거리를 울긋불긋 물들이던 "내 어린 날의 절명 눈물"이여!

시인·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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