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 증별정원백(贈別鄭元伯:헤어지는 겸재 정선에게)-이병연

자네 떠나가는 서쪽의 저녁놀이 슬프구나

우리 둘이 합해야지 왕유(王維)가 될 터인데 爾我合爲王輞川(이아합위왕망천)

둘이 헤어지게 되면 둘 다 앙꼬 없는 찐빵 畵飛詩墜兩翩翩(화비시추양편편)

자네 싣고 가는 나귀 안 뵈도록 바라보니 歸驢已遠猶堪望(귀로이원유감망)

서천(西天)을 확 싸지르는 저녁놀이 슬프구나 怊愴江西落照天(초창강서낙조천)

'경교명승첩' 가운데 한 폭인 '시화상간도'(詩畫相看圖). 사천과 겸재가 시와 그림을 함께 음미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왕유(王維:701~761)는 중국 당나라의 대시인이다. 그가 남종(南宗) 문인화의 창시자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화가인 동시에 시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시 속에는 그림이 들어 있고, 그의 그림 속에는 시적 정취가 어려 있다. 이른바 소동파(蘇東坡)가 말한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가 바로 그것이다.

위의 시를 지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영조 시대의 최고 시인이다. 이 시를 받게 될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같은 시대의 최고 화가다. 그들은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서 같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일생동안을 시와 그림의 세계에서 같이 놀았던 천하에 둘도 없는 지기였다. 하지만 사천은 시인일 뿐이고 겸재는 화가일 뿐이므로, 그들이 만약 헤어지게 되면 시는 그림을 잃게 되고 그림은 시를 잃게 된다. 둘 다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림과 시를 한 몸에 겸했던 왕유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 있다.

그런데 겸재가 한강 건너편의 양천 현령, 오늘날의 양천구청장에 부임하면서 그들은 서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헤어지기 전에 약속을 한다. 사천이 시를 지어 겸재에게 보내면 겸재가 그림을 그리고, 겸재가 그림을 그려 사천에게 보내면 사천이 시를 짓자는 약속. 앙꼬 없는 찐빵이 되지 않기 위한 짜장 눈물겨운 노력이다. 두 사람이 합작한 전설적 시화집(詩畵集)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은 바로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로 태어났다.

지난 30년 동안 같은 과에 근무했던 한문학자로서 문인화에도 능했던 경허(耕虛) 김남형 교수가 이번에 정년퇴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와 나는 그 동안 줄잡아 만 그릇의 밥을 같이 먹었고, 오천 번에 가까운 산책을 같이 했다. 바로 옆방에 있으면서 하루에 서너 번 정도 오고 가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그 때마다 시와 그림을 맛보면서 그 오랜 세월을 참 잘도 놀았다. 물론 사천과 겸재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니지만, 떠나가는 그의 보따리에다 이 시를 슬며시 작별 선물로 넣어놓고 싶다.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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