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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명절여담(名節餘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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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경북 안동지역의 몰락한 양반가 후손에게 할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왔다. 가난한 살림이라 보리밥 한 종지에 찬물 한 그릇을 올려야 할 형편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궁리 끝에 묘수를 찾았다. 헌 달력을 오려서 '현조고학생부군신위'라고 지방(紙榜)을 쓰고는 가슴에 정중하게 붙였다.

그러고 나서 안동의 시장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시장통에 즐비한 밥(메)이며 국(갱)이며 각종 육류와 과일까지 할아버지가 두루 드시길 권했다. 한데 그날따라 어물전이 시원찮았다. 내친걸음에 어찌어찌 노잣돈을 변통해서 영덕 강구항으로 나갔다. 멀리서 들어오는 고깃배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에게 싱싱한 해물을 마음껏 드시라고 축원했다.

그런데 항구 가까이 다가선 그 배는 다름 아닌 분뇨수거선이 아닌가. 불효 손자는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가슴에 붙인 지방을 떼서 거꾸로 들고 털면서 "할배요 빨리 토하이소"라며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이 우스갯소리에는 우리의 오랜 제사 문화의 명암이 드리워져 있다.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평민은 부모 제사만 지냈다. 사대부가 조부모까지였고, 3품 이상의 고관대작도 3대 봉사면 족했다. 그런데 조선 중기 이후 너도나도 양반 행세를 하고 가문의 세를 과시하는 데 치중하면서 고조부모까지 제사가 일반화되었다. 상차림도 주자가례나 격몽요결 등 유교의 기본 예법서에 기록된 간소함을 벗어나 허례허식이 늘어났다.

추석 명절을 보내면서 이른바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귀성길 장거리 운전과 차례 음식, 가사노동의 불평등 그리고 젊은이들의 명절청문회 스트레스…. 조상을 기리고 가족의 우애를 다져야 할 명절이 고통과 갈등과 불화의 시공간이 된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진짜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다 해외여행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차례상 차리며 가족끼리 싸운다"는 사회 일각의 자조적인 풍자도 없지 않다. 그런 만큼 명절 문화의 합리화와 차례상의 실용화를 추구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문화와 풍속은 시대 변화에 부응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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