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적응장애에 우울증까지, 정신건강 위협받는 대구경북 청소년들

우울증 환자 해마다 늘어…과도한 스트레스와 학업량에 '학업소진' 빠질수도

민호(가명·20) 씨는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샌드백'으로 불렸다. 키 180㎝에 몸무게가 75㎏이 넘는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순한 성격 탓에 자주 놀림감이 됐기 때문이었다. 동급생들은 수시로 민호 씨를 때리거나 괴롭혔다. 학교 화장실로 끌고가 바지를 내리게 하거나 억지로 담배를 피우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견디다못한 민호 군은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고, 한동안 불면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수아(가명·19) 양은 중학생이 되면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어려웠다. 수아 양은 홀로 고민하며 속으로만 화를 삭혔고, 2년 동안 심한 우울증에 손까지 떨리는 증상을 겪은 후에야 전문상담센터를 찾았다.

우울증이나 적응장애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대구경북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만이 원인은 아니다. 교우 관계의 어려움이나 지속적인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다못해 정신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울러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정신건강 진료의 문턱이 낮아진 점도 환자 수가 늘어난 원인으로 풀이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대구경북 청소년은 2015년 1천594명에서 지난해 2천111명으로 3년간 32.4%나 증가했다. 심한 스트레스 반응이나 적응장애 등으로 진료받은 청소년도 같은 기간 835명에서 908명으로 8.7% 늘었다. 이 밖에 불안장애 증상을 호소한 청소년도 최근 3년 간 4천100명에 이른다.

만성적인 학업 스트레스와 지나친 학업량 등으로 이른바 '학업소진'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학업소진은 학업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심리적 피로와 정서적 고갈, 냉소적 태도를 보이고, 자신감과 성취감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학업소진자는 전국적으로 2015년 41명에서 지난해 80명으로 두배 가량 늘었다.

그러나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학업소진을 단순히 나태하거나 게으른 행동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수험생 이모(19) 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늘 피곤했다. 공부하기 지쳤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고, 친구들도 상황이 다 비슷해 불평할 수도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나 적응장애, 학업소진 등의 증상이 계속 진행되면 학업 중단이나 비행 등 문제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영아 대구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청소년들이 일시적 충동을 자제하고 인내할 수 있는 자기통제감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면서 "부모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정과 학교에서도 자기통제감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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