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와대통신] 구름위의 산책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최경철 서울정경부장

한 달이 좀 더 지난 일이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던 지난 9월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추석맞이 농수산물 직거래 장터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도 장터를 찾았다. 행사를 주최한 농협 관계자가 문 대통령에게 올해 과일의 작황과 가격 현황에 대해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김 여사를 가리키며 "여기 구매자를 상대로"라고 했다. 안주인 김 여사가 자신보다 훨씬 잘 안다는 뜻으로, 김 여사에게 설명해 달라는 의미였다.

농협 관계자가 "올해 냉해 피해를 봐서 사과가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여덟 개에 4만8천원이면 한 개에 얼마야, 한 개에 6천원이네요"라고 한 뒤 "제가 청와대에 온 뒤로 시장을 안 봐서 물가가 비교가 안 돼요"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장을 보지 않다 보니 한 개 6천원이라는 가격이 평소보다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의미였다.

청와대가 배포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지나간 추석 장터 행사에서 문 대통령 부부가 언급한 내용을 우연히 다시 읽게 됐다. 그리고 청와대에 온 뒤로 장을 보지 않았다는 김 여사의 한마디에 또 한 번 눈길이 멈췄다.

청와대라는 집은 대통령 부부에게 찰나의 사생활도 허락하지 않는 곳일 터. 김 여사는 시장 장보기는커녕, 청와대 근처 상점에 들르기도 어려울 것이다. 살림꾼으로 알려진 김 여사가 과일 가격에 대해 자신 없어 하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탈원전 정책을 들고나와 밀어붙였다. 국가가 직접 나서 나라 곳간을 활짝 열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최저임금을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며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나섰다.

정책은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위에 열거된 정책들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자꾸만 까먹는 이유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장터에 나온 김 여사의 발언에 묻어 있는 것처럼 청와대라는 구중궁궐(九重宮闕)은 살림도사·주부구단의 안테나도 무디게 만든다.

문 대통령은 이를 미리 파악한 듯 지난해 그의 취임사에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했고,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겠다"고도 말했다.

현장 파악이 힘든 '청와대 대통령'의 구조적 난관을 뚫는 것이 숙제다. 숙제를 풀지 못하면 경제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내치(內治) 행보가 구름 위의 산책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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