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판매 영업사원의 불법 대리 수술로 전국적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구경북에서도 대리수술이 만연하고 있다는 폭로가 제기됐다.
올해 초까지 외상·골절전문 의료기기 도매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던 A씨는 "대구경북에 있는 정형외과병원 10곳 중 9곳에는 영업사원이 집도의와 함께 수술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A씨가 근무한 곳은 세계적인 의료기기장비 제조사의 장비를 납품하는 도매업체다.
2013년부터 5년 간 해당 업체 영업사원으로 근무한 A씨는 입사 후 10개월 동안 의료기기 사용법과 수술실에서 역할 등을 배운 뒤 수술실에 투입됐다.
그러나 A씨는 실제로 수술을 하거나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이미지 트레이닝만 한 채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한다. A씨가 4년여간 수술실에 들어간 병원은 지역 대학병원 2곳을 포함해 무릎관절 병원과 정형외과 전문병원 등 20곳이 넘는다.
A씨에 따르면 대구의 의료장비 판매업체들은 권역별로 나눠 병원을 출입했다. 그는 "하루에 적게는 2회, 많게는 4회 정도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제지없이 수술실에 들어가…마구 수술
정장 차림의 영업사원들은 탈의실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뒤 자연스럽게 수술실에 투입됐다. 수술실을 출입하는 의료기기업체 영업사원들은 수술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어시(어시스턴트)'로 불렸다.
수술 과정에서 장비나 기기 사용법에 대한 조언 정도를 하는게 정상이지만, 사실상 수술을 주도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주로 골절 수술이나 인공관절 전치환술 등에 사용되는 이식재료 등을 납품하며 수술에 함께 투입된다.
A씨는 "영업사원은 수술 전반에 관여한다"고 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환부를 소독하고 주변 신체에 수술포를 덮는 일 뿐 아니라 수술 준비가 끝나면 손을 닦고 집도의와 수술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본격 수술에 들어가면 절개한 환부에 고정기를 넣고 수술 부위를 벌려 집도의의 시야를 확보해 준다. 또 수술 기구로 이물질을 흡입하거나 흐르는 피를 지혈해 조직을 깨끗하게 잘라내는 도구까지 직접 사용한다고 했다.
심지어 절개한 환부가 크지 않은 경우에는 직접 봉합까지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사실상 의료진과 똑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A씨는 "이식자재를 사용하는 수술을 하고 있는 대구지역 정형외과 중 상당수가 영업사원의 불법 대리수술을 당연시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요즘은 2개월 정도 간단한 교육 후 수술실에 들어가는 영업사원도 많다"고 주장했다.
◆경북 지역 중소도시는 더욱 의존 심해
경북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중소도시의 경우 수술 건수가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수술 경험이 많은 영업사원들에게 더욱 의존한다는 게 전직 영업사원의 설명이다.
경북에서 활동했다는 전직 영업사원 B씨는 "중소도시 정형외과병원의 경우 영업사원과 집도의가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다. 집도의가 환부를 절개한 후 손을 놓고 있거나 어시가 모든 수술 상황을 조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씨는 안동과 영주, 경주, 포항 등 경북 지역 중소도시를 돌며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B씨는 "경북 동북부 지역의 병원 10여곳에 들어갔다. 오전에 안동에서 수술을 하면 오후에는 영주에 들르는 식"이라며"수술은 환자와 의사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수술 참여 문제가 근절되지 않는 건 결국 '돈'과 '시간' 탓이다. B씨는 "수술 건수에 비해 의료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정형외과는 수술이 급한 환자가 많아 영업사원이 수술을 돕게 된다"면서 "영업사원이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각 병원들은 하루 수술건수의 20%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법 대리 수술이 판치지만 대책 마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영업사원이 수술실 밖에 마련된 '참관수술실'에서 사용방법을 설명하지만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수술 문제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관행"이라면서도 "수술 기구가 너무나 다양하고, 전자제품처럼 도중에 중단해 AS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기구의 보다 정확한 사용법을 아는 영업사원의 역할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구시 관계자는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확인이 쉽지는 않다"면서도 "다음달 초에 병원과 약국 등 40곳을 대상으로 합동점검을 벌여 의료법 위반 실태를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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