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민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썩 달갑지 않은 진단을 받았다. 주먹을 쥐기 어렵고, 손가락을 굽혔다 펼 때 방아쇠가 딸깍거리는 듯한 마찰음이 나는 '방아쇠 수지'란다. 의사는 그냥 두면 잘 낫지 않아 수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병의 원인은 몇 달 전 시작한 골프다. 부부 공통의 취미를 갖자는 아내 잔소리에 평생 인연 없을 듯했던 골프채를 잡은 게 화근이었다. 누가 '목구멍으로 냉면이 넘어갑니까?'라고 깐족거려도 주먹 한 방 날리지 못할 처지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따지고 보면 국내 동호인 600만 명을 헤아리는 골프에 뭔 죄가 있으랴? 중년의 즐길거리로 시작해놓고선 죽기 살기로 덤빈 만용(蠻勇)이 문제다. 그립 잡는 기본도 익히지 않은 채 싱글 골퍼를 꿈꾼 이 철딱서니 없음이란….
그런데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청와대의 조급증과 오만도 청맹과니인 나 못지않게 심각한 듯하다. 서민들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취업 준비생들은 고용 한파에 이번 생을 포기하고 싶다며 아우성인데 정책을 수정할 기미는 눈 씻고 봐도 없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오히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라는 일부 주장은 한국 경제를 더 큰 모순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까지 목청을 높인다.
이 정권의 허세인지 신념인지 모르겠지만, 심리학 용어 '더닝 크루거 효과'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능력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오류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 코넬대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가 학생들을 실험했더니 성적 낮은 학생이 되레 자신의 순위를 높게 예상했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문재인 대통령도 못지 않은 듯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씨를 뿌려 결실을 맺을 때까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느낀다는 책임감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제발 그 대상이 524 대북조치 해제,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가 아니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며 촛불 들었던 이들의 행복이길 간절히 바란다.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말한 '웅덩이를 채우고 바다로 흘러가는 물'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낙엽 떨어진 거리에 나서면 '임대' '권리금 없음' '폐업 세일' 같은 마지막 비명((悲鳴)을 내건 가게들이 부쩍 많이 눈에 띈다. 통계청이 7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노동비용 상승 등으로 한계에 이르러 문 닫는 자영업자가 급증, 비임금 근로자가 2013년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늦은 시간까지 일 하느라 술집에서 업무추진비로 식사한다는 청와대 사람들은 알 리 없겠지만 '사장님의 나라'에서 사장님들이 사라지고 있다.
20년 전인 1998년 박세리는 그 유명한 '맨발 샷'으로 US오픈 골프대회 정상에 올라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아직 트리플 보기만 해도 기쁘고 쿼트러플 보기, 퀸튜플 보기에 무덤덤한 나로선 흉내조차 못 낼 도전이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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