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을 반추한다  

장동희 경북대 겸임교수/전 주 핀란드 대사

장동희 경북대 겸임교수
장동희 경북대 겸임교수

한국 사법부 내린 판결 거칠게 비난

일본 외무상의 행동 너무나 편협해

양국 지도자 국수주의 언동 삼가고

자국민 설득할 용기·결단 보여줘야

대법원이 지난달 30일 내린 일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격렬하다. 판결이 나오자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일한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판결로…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제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고노 외상은 심지어 이 판결에 대해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 '폭거'라는 거친 용어까지 사용했다.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은 이미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는데 왜 또 합의를 뒤집느냐는 것이다.

타국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두고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비난을 하더라도 우리 정부 입장이 나온 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자행한 온갖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눈감고, 협정 문안 하나하나에 집착하여 우리 사법부의 판단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행동이다.

그러나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외교 활동에 관해서는 사법적 판단을 자제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경향이다.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 정부가 미국인 소유 설탕 공장을 무단 국유화한 데 대해, 미연방 대법원은 1964년 "외국 정부가 그 영토 안에서 재산을 수용한 경우 비록 그 수용 행위가 국제관습법을 위반했다고 해도… 미국 법원은 그 수용 행위의 효력을 사법적으로 검토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국가행위이론'을 적용하여 외교 사안에 대한 사법부 관여 자제를 언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바티노 사건'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강제징용이라는 일제의 불법행위에 기한 배상 청구권이 1965년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지만, 일제 식민 지배의 법적 성격에 대한 논란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냈다. 대법원 판결은 일제 강점은 불법이며, 따라서 강제징용도 불법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일본 입장은 아베 신조 총리가 강제 징용자들을 당시 '국가총동원법 국민징용령'에 따른 징병이라고 말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일본의 조선반도 지배는 한일합방조약에 따른 합법적 조치이며, 일본 법령에 따라 행한 징집 조치도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외교 협상에서는 '의견을 달리 하기로 합의'(agree to disagree)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 사안 하나 때문에 전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 사안에 대하여는 각자 자기 식으로 해석하도록 묵시적 양해를 하는 것을 말한다.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된 한일기본조약 2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정부는 1910년의 한일합방조약이 강박에 의한 조약이므로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과 더불어 동 조약이 무효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외교적으로 남겨둔 의도적 모호성(intentional ambiguity)에 사법부가 개입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사법 거래 의혹의 사회적 파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전 대법원은 강제징용 사건의 경우, 한일 양국 간 외교 관계에 미칠 파장을 감안, 판결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룬 것으로 추정된다. 사법부가 외교 사안에 관여하는 것이 적절치 않음을 법리적으로 당당히 천명하지 못하고, 판결을 미룸으로써 관여를 자제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한 것은 비겁하다. 그러나 판결은 이제 내려졌다. 이제는 이 판결을 전제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양국 정치 지도자들은 국수주의에 호소하는 언동을 삼가고, 자국민들을 설득할 용기와 결단을 보여주어야 한다. 등지고 살기에는 두 나라가 너무나 많은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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