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채영 씨 부친 김상일 씨

돌아가신 아버님의 카메라 유산에 지은 죄 

김채영 씨 부친 김상일 씨 증명사진. 가족제공.
김채영 씨 부친 김상일 씨 증명사진. 가족제공.

1952년, 아버님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에 살고 있던 집안 마당에서 조그마한 군용 천막을 치고 천막 사진관을 개업하셨다.

아버님은 일본인 밑에서 사진 기술을 배웠다. 6·25전쟁 2년 후 차린 군용 천막 사진관은 꽤 인기가 높았다. 아버님은 그에 힘입어 대구의 조그마한 이층 집을 임대 얻어서 본격적인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님 밑에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접할 수 있었다. 연로해지신 아버님은 1990년 사진 현역에서 은퇴하셨고, 자연스레 나는 가업을 이어받았다.

딱 30년 전에 일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당시 아버님께서 내게 물려주신 카메라 유산을 2020년 추석 하루전 날, 근 20여 년 만에 풀어서 열어 보았다.

그동안 중국 사업한답시고, 아버님의 유산을 플라스틱 박스에 때려잡아 넣어서 집 창고 구석에 꽁꽁 처박아 놓았다가 20여 년 만에 봉인을 풀어서 햇빛을 비추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분신을 인제야 풀어드린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에 콧등을 훔쳤다.

김상일 씨가 김채영 씨에게 남긴 카메라. 가족제공.
김상일 씨가 김채영 씨에게 남긴 카메라. 가족제공.

아버님 손때와 나의 젊은 시절 땀방울이 묻은 카메라와 기구들의 세월 이끼를 20년 만에 마른 수건으로 닦아 내면서, 30년 전의 한창 카메라와 촬영기를 품고 살면서 현장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나는 다 쓰러져가는 일본식 다다미 이층집의 2평도 채 되지 않는 캄캄한 암실 방에서 매캐한 현상액 냄새를 맡아가며 아버지께 일을 배웠다.

현상액의 온도는 항상 섭씨 20도를 유지해야만 했고, 야광판이 현상 중인 필름에 1초 이상으로 노출되어서 행여나 필름이 감광되어 타버리면 아버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화이보(정착액)에 필름을 넘기는 시간이 빠르거나 늦어지지 않도록 현상 조시를 볼 때는 나는 거의 동물적 감각으로 작업하면서 입안은 항상 긴장감으로 바싹 타 들어 갔었다.

아버님께서 내가 현상한 증명사진용 흑백 원판 필름을 연필 수정 형광등 판 위에 올려놓고 보면서 고개를 끄떡이시면,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인물 사진 흑백 필름에 니스 기름칠을 묻히고 커다란 돋보기를 통하여 가늘고 뾰쪽하게 간 연필로 수정을 하는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특히 아버님의 주름진 눈은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는 장인의 눈빛이었다. 나는 그 진지한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아버님께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영남대 병원 응급실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자식 걱정만 하셨다. 평소에 심장이 좋지 않으셨지만, 황망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의 운명에 그 당시 내 평생 울 수 있었던 모든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그것이 아버님께 무슨 소용이 있으랴.

아버님은 지금도 자식이 자신을 추모하는 눈물보다는 자식들의 성공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효도'라는 것은 선친을 열심히 추모하는 것 보다, 자식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아버님께서 늘 나의 심장 속에 살아 계시면서 힘들 때마다 나에게 용기를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 아버님께 편지를 쓰려고 막상 사진을 찾아보니, 명색이 사진관 집안인데 아버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한 장을 찾지 못했다.

망연자실. 아...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왔구나. 이런 불효막심한 인간이 어디 있나.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네.

남들에게는 그 많은 사진을 찍어 주면서, 막상 제대로 된 아버님 사진은 달랑,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내가 직접 찍어 드린 증명사진 한 장밖에 없음에, 나의 모든 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자괴감과 그 철저한 무심함에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졌다.

아버지 김상일 씨가 김채영 씨에게 남긴 루페. 가족제공.
아버지 김상일 씨가 김채영 씨에게 남긴 루페. 가족제공.

허리를 굽혀서 희미한 형광등 불판 위에 필름을 얹혀 놓으시고 목에건 작은 루페(확대경)를 통해 필름을 바라보는 아버님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시 한 번만이라도 아버님의 굽은 등과 나지막이 좁은 어깨를 주물러 드릴 수만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아버님이 손수 사용하시던 이 루페를 들여다보면 아버님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일 것만 같아서 몇 번이고 조그마한 유리 세상을 들여다본다

선친께서 물려주신 옛날 골동품 같은 카메라와 기구들을 이제 사진으로 남겨 보면서 함께 나의 젊은 인생을 동고동락해왔던 옛 카메라들을 마음속 깊이 새겨서 각인해 본다.

아버님. 정말 보고 싶습니다.

불효막심한 장자가 아버님의 카메라 유산을 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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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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