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식은 1918년 여름 금강산을 답사했다. 안중식을 회장으로 화가, 서예가들이 모여 서화협회를 창립한 얼마 후 오세창, 조석진, 이도영, 고희동 등과 함께였고, 천도교 손병희 교주를 비롯해 권동진, 최린 등이 동행한 10여 명의 일행이었다. 미술계와 종교계 양쪽의 주요 인사인 오세창으로 인해 두 그룹은 평소 잘 아는 사이였다.
'원유이장기기(遠遊以壯其氣)', 곧 '멀리 여행함으로서 기운을 씩씩하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뜻이 맞는 동지들과 금강산을 함께 유람할 기회는 누구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여행이 문화적 행위로 자리 잡은 17세기 이래 금강산과 동해 관동팔경은 명산대천의 으뜸으로 꼽혔다.
1914년 경원선이 개통하자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을 찾아갔다. 서울 남대문역에서 원산역까지 기차로 가고, 원산에서 장전항으로 배를 타고 이동해 해금강을 둘러보고, 온정리에서 부터 외금강과 내금강을 구경하는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내금강으로 들어갔던 조선시대와 달리 해금강 총석정, 외금강 삼선암이 대표적인 명소로 널리 알려져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졌다. 외금강 삼선암을 그린 '삼선봉' 제화는 운자로 보아 칠언절구시일 텐데 제3구에서 한 글자를 실수로 빠트렸다.
해상하래벽옥총(海上何來碧玉樷)/ 바다 위 어디에서 온 벽옥 떨기인가
홀언첨촉홀영롱(忽焉尖矗忽玲瓏)/ 홀연히 뾰족하고 무성하며 홀연히 영롱하네
안전유천반상(眼前有千般相)/ 눈앞에 천 가지 형상이 있어
불신인간색시공(不信人間色是空)/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세상의 말 믿지 못하겠네
해석인형(海石仁兄) 아촉(雅屬) 심전(心田)/ 해석인형의 부탁으로. 심전(안중식)
안중식은 뾰족한 바위 봉우리의 수려한 박진감과 실경의 사실감을 고전 산수화의 차분함과 우아함으로 결합시켰다. 아스라한 원산으로 좌우를 호위해 삼선암의 위용을 나타냈고, 왼쪽 아래 두 마리 학으로 '세 신선 봉우리'의 선경(仙境)을 돋보이게 했다. 정형산수를 그렸던 안중식이 금강산 실경을 소화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안중식의 부음을 알리는 신문기사에 그가 운명하기 전날까지 그리던 그림이 금강산 삼선암이라고 했다. 금강산을 다녀온 이듬해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동행했던 오세창, 손병희, 권동진 등 삼일운동 33인과 오랫동안 친밀했다는 이유로 일경(日警)에 잡혀가 내란죄로 경성지방법원에 회부돼 심한 문초를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11월 5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금강산을 그린 기간이 채 2년이 되지 못했다. 안중식은 금강산을 마음껏 그려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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