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남 탓하는 사람, 남 탓하는 정치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일이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삶에 힘겨워한다. 사람들은 배우자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녀 때문에, 상사 때문에, 동료나 친구 때문에, 부하 직원 때문에, 자신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한다. 또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이 잘못될 때, 삶이 힘들 때, 남이나 주위 환경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다.

또한, 매사를 남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극치인 곳이 정치권이다. 정치인들은 어떤 불미한 사건에 연루되면 하나같이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말한다. 명백하게 잘못이 밝혀진 경우에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사과하거나 반성은 하지 않고 남 탓하기"에 바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적폐 수사'이고 남이 하면 '정치 보복'이다.

이렇게 남 탓을 하는 것을 정신의학적으로는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영사기를 통해서 나오는 스크린의 영상을 보고 그것이 영사기가 아닌 스크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과 비슷하다는 데서 나온 용어다. 자신의 문제를 남 탓으로 돌려 자신의 불안감, 책임감,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심리적 대응책이다. 그러나 투사를 부적절하게 많이 사용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병폐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다. 그 사람의 잘못이므로 그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물론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탓해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비록 타인이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오롯이 남 탓으로 돌린다면, 남이 바뀌기 전에는 내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타인 의존적 삶'이지 '자기 주체적 삶'이 아니다.

우리가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든 정치가 우리의 삶에 주요한 영향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가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데, 작금의 정치는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이 정치 때문에 불편하다. 막대한 힘을 가진 정치가 오롯이 자기반성 없이 남 탓만 하기 때문이다. 자기반성 없이 남 탓만 하는 정치는 절망의 정치이다. 반면 남 탓 없는 자기반성에 투철한 정치가 희망의 정치이다. 절망의 정치로 갈 것인가 희망의 정치로 갈 것인가 어떤 정치를 선택할 것인가는 국민들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깨어 있는 국민이 자기반성 없이 남 탓만 하는 절망의 정치를 끊어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 자기반성보다는 남 탓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핵심은 '불취외상 자심반조'(不取外相 自心返照: 바깥 모양을 취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 보다)라는 데 있다.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바깥 모양(外相), 다시 말해 남 탓 하지 말고, '자심반조'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보라는 뜻이다.

사실 정신치료도 자기 문제를 남이나 외부로 투사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자심반조'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자기 주체적 삶'은 투사를 없애고 자심반조하는 것이고, '희망의 정치'도 투사를 없애고 자심반조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남 탓 하지 않는 '자기 주체적 삶'을 통해, 우리 정치가 남 탓 하지 않는 '희망의 정치'를 통해 오늘보다 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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