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이정식 씨의 할아버지 고 이병선 씨, 할머니 고 서선이 씨

"지어 주신 이름대로 살고 있어요…새우깡·된장라면 추억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정식 씨가 아기였던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이 할아버지 고 이병석 씨, 오른쪽이 할머니 고 서선이 씨, 서 씨 품에 안긴 아기가 이정식 씨. 가족 제공.
이정식 씨가 아기였던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이 할아버지 고 이병석 씨, 오른쪽이 할머니 고 서선이 씨, 서 씨 품에 안긴 아기가 이정식 씨. 가족 제공.

유난히도 더운 계절에 두 분을 각각 보내드렸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좋았던 기억만 가득했기에 더 생각이 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 활동적인 아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가기 싫었던 것은 괜히 낯 부끄러운 이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귀한 손주라고 이뻐해 주시며 이래 저래 챙겨주시는 것이 부끄러운 것인지, 부담이 되는 것인지 쪽방에 도망쳐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던 것도, 게임을 할 수 없어 엄마에게 빨리 돌아가자고 떼를 쓴 것도, 그런 손주를 달래주시려 작은 오토바이 앞좌석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아주신 것도….

책을 보면서 먹으라고 사 주신 그 당시 제 취향에 하나도 부합하지 않던 노래방 새우깡과 시골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손주에게 끓여주시던 된장라면, 새벽이 되면 엄마보다 먼저 아침을 알려주던 마당에서 울던 닭과 아침부터 정신 사납게 들리던 멧비둘기 소리까지 중 단 하나도 지금 느끼는 이 감정과 그 당시의 감정이 오롯이 같을 수 없는 것은 그리움 때문이겠지요.

최근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그런 날이었습니다. 한없이 서럽고,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지금에 와서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만 그 때는 너무 무거운 마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 아버지가 산소에 가신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 앉아서 그냥 하염없이 푸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왜인지 모르게 후련해지면서도, 아쉽기도 했었던 건 묘에다가 이야기 하는게 아닌 살아계신 두 분께 이야기 했다면, 우러나오는 경험과 삶으로 좀 편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겠죠? 그 때 약속을 아직도 못 지키고는 있습니다만, 그 약속이 결국 삶을 지탱하는 이유가 된 것 또한 도움이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은 손자입니다. 이뤄낼 것 또한 많은 삶이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이 것을 계속 할 수 있던 이유 또한, 두 분과의 기억 때문이라 봅니다. 자그마한 체구로 요리조리 꿈틀거리는게 춤인지 몸부림인지 하며, 노래를 불러대는 손자가 얼마나 귀여우셨으면 그럴 때마다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었기에 그것들을 좋아했고, 그로인해 많이 접하고 공부하며 결국은 그 일을 하며 살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두 분과 한 약속에 종착지는 오지 못했습니다. 아마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때 푸념하던 시절처럼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이름의 의미도 있겠거니와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한들 분명히 어딘가 에선 응원 해 주시고 계시리라는 믿음이 있기에, 부득부득 살아 가고 있습니다.

正植, 바르게 심어 가야한다. 무엇이든 정직하게 사도로 이탈하지 않고, 지어주신 이름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일궈가는 동안 지켜봐 주실 것이기에 지난 추억과 앞으로의 과제를 해내면서, 그리움이 있을 때 마다, 새우깡과 된장라면에 담긴 추억과 두 분의 사랑의 기억으로 충분히 이겨내리라 생각합니다.

매우 추운 계절에 두 분에 대한 그리움을 쓰자니 두 분을 떠나보낸 지 어언 20년이 되어가는 시간이 지나 글을 쓰자니 벅차오르는 감정도 감정이고, 조금은 퇴색되어버린 기억에 두서가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보고 계시다면 '잘 기억하고 있구나'하며 웃어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두 분이 떠나고 시간이 정말 훌쩍 지나, 손주 며느리도 있고, 증손주도 있는데 이 순간에 두 분만 기억에만 있다는 게 아쉽지만, 그것은 또 그것 대로 조카들에게 두 분에 대해 추억을 이야기하며, 두 분이 제게 주셨던 애정만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 또한 좋은 거라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 지나 봄이 오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때 다시 또 한 잔 올려드리며, 두런두런 이야기 드리도록 할게요.

많이 보고싶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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