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덕일의 내가 보는 가야사] 文정부 '가야본성' 전시의 의미

일본서기 중심의 유물 해설…국고로 임나일본부 선전
1세기 건국 사기·유사 기록있지만 식민사학자가 주장한 3세기로 표기
증거인 '흙방울토기' 뒤늦게 창고에

김해 수로왕릉 앞의 파사석탑, 허왕후가 서기 48년 아유타국에서 싣고왔다는 유물이다.
김해 수로왕릉 앞의 파사석탑, 허왕후가 서기 48년 아유타국에서 싣고왔다는 유물이다.

◆'가야본성'전이라는 요상한 전시회

필자와 함께 역사공부를 하거나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가기관들이 왜 그렇게 가야사를 임나일본부설로 둔갑시키려 조직적으로 움직였는지 하는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하라고 지시했을 때 일제히 반발하던 식민사학자들이 얼마 후 약속한 것처럼 일제히 비판의 입을 다물었을 때 '혹시 식민사학자들과 손잡고 가야사를 일본극우파들에 팔아넘기는 것 아닌가?'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런 불길한 생각은 2019년 12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본성(加耶本性)'이란 이름의 가야전시회를 열었을 때 사실로 드러났다. 이듬해 3월 1일까지 계속된 '가야본성'은 1945년 광복 후 우리 사회가 그나마 유지해왔던 기본 원칙을 여지없이 부셨다.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국가기관이 나서서 친일매국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신라본성', '고구려본성', '백제본성' 따위의 용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본성(本性)'은 일본어 '혼쇼(ほんしょう)'로 '천성' 또는 '본심'이란 뜻이다. 이 전시회의 내용에서 말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의 '혼쇼는'은 고대 야마토왜(大和倭)의 식민지 '임나'라는 것이었다.

◆'가야본성'에 대한 보수·진보 언론의 비판
'가야본성'전이 개막하자마자 대표적인 보수, 진보 두 언론이 동시에 비판하고 나섰다. 보수언론은 12월 6일 '문 코드 맞추려, 검증 안 된 지역 유물도 '가야''라고 비판했고, 이틀 후 진보언론에서 '검증 안 된 유물까지 '묻지마 전시', 관객 우롱한 가야전'이라고 가세했다. '검증 안 된'이라는 제목까지 똑같을 정도로 두 신문 기사는 서로 바꾸어 실어도 독자들이 구분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본성 포스터, 국고로 임나일본부설 대변했다는 숱한 비난을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본성 포스터, 국고로 임나일본부설 대변했다는 숱한 비난을 받았다.

고령 지산동 가야고분에서 나온 흙방울 토기,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건국사화를 고대 가야인들이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유물이다.
고령 지산동 가야고분에서 나온 흙방울 토기,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건국사화를 고대 가야인들이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유물이다.

비판의 요지는 '흙방울 토기'와 '파사석탑'을 전시했다는 것이었다. 흙방울토기는 2019년 3월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6개의 토제유물로서 거북무늬 그림과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자루와 그를 보고 환호하는 형상 등이 그려져 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말하는 가야건국 사화(史話) 중에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하는 구지가(龜旨歌)를 그린 것이었다. 고대 가야인들이 서기 42년 김수로왕이 가락국을 건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토기이다.

파사석탑은 김수로왕과 국혼(國婚)하는 허황옥(許黃玉), 곧 허왕후가 서기 48년 아유타국에서 가져왔다는 석탑유물이다. 두 유물 모두 가야가 서기 1세기 초에 건국했다는 '삼국사'·'삼국유사'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임을 말해주는 유물들이다. 이런 유물을 전시했는데 왜 두 론이 '관객을 우롱했다'고 비난했을까?

우리나라 국민은 서기 42년에 김수로왕이 가락국을 건국했고 허왕후가 48년에 아유타국에서 와서 왕비가 되었다고 믿는다. '삼국사기'·'삼국유사'와 여러 유적·유물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 가야사 연구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야가 서기 3세기 후반에 건국되었다고 주장한다. 조선총독부 시절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지금껏 추종한다. 일제가 한국을 점령하기 전까지 가야가 3세기 후반에 건국되었다고 본 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대학 사학과를 100% 장악한 강단사학자들은 가야가 3세기 후반에 건국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이들의 관점에 선 기자들이 왜 가야 1세기 건국사실을 말해주는 유물을 전시했느냐고 난타한 것이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화들짝 놀라 '흙방울토기'는 창고에 처박아 버리고 파사석탑에는 '신화'라는 딱지를 붙여 그 가치를 깎아내렸다.

◆야마토왜 사신의 종에게 절절매는 백제왕?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이 두 유물을 전시한 것은 일종의 희석작전이었다. '임나일본부설'로 뒤덮은 '가야본성'의 실체를 희석시키려는 것이었다. 실제로 '가야본성전'은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니라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기획·주관했다면 명실이 상부한 전시회였다. 전국 각지 가야박물관의 유물을 한군데 모아놓은 유물은 훌륭했다.

가야본성 연표, 일제가 주장했던 임나일본부설을 버젓이 적어 놓았다.
가야본성 연표, 일제가 주장했던 임나일본부설을 버젓이 적어 놓았다.

문제는 벽에 붙은 설명문들이었다. 설명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참고문헌이 (서기)였다. 아직도 한국재점령을 꿈꾸는 일본 극우파들의 경전인 '일본서기'를 말하는데 '일본서기'라고 쓰면 혹시 관람객들이 본뜻을 알아챌 것을 우려해서 (서기)라고 축약했다. 그러니 '삼국사기'는 '사기', '삼국유사'도 '유사'라고 축약해야 했다. 아비를 아비라고 부르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의 슬픈 자화상이다.

전시회의 설명문이나 지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라면 책 한 권도 부족할 것이다. 그중에 '366년 가야 탁순, 백제와 왜의 교류중개(서기)'라고 내용이 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 '가야 탁순'은 '일본서기'에만 나온다.

'일본서기'에는 야마토왜의 신공(神功)왕후가 재위 46년(서기 246년)에 사마숙녜(斯摩宿禰)를 탁순국에 사신으로 보냈다고 나온다. 탁순국왕은 사마숙녜에게 2년 전인 갑자년(서기 244년)에 백제인들이 와서 일본귀국(日本貴國)에 조공을 바치고 싶은데 길을 몰라서 못 바친다면서 길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숙녜는 자신의 겸인(傔人·종}) 이파이(爾波移)를 백제에 보냈다고 한다. 사마숙녜의 종 이파이를 만난 백제왕 초고(肖古)는 철정(鐵鋌:덩이쇠)과 비단 등 후한 선물을 주면서 "귀국(貴國·야마토왜)에 공물을 바치고 싶은데 길을 몰라서 못 바쳤다"면서 앞으로 공물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국립중앙박물관의 눈에는 '가야 탁순이 백제와 왜의 교류를 중개'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끝내 일본까지 간 가야전시회
'일본서기'의 이 탁순을 남한 강단사학자들의 영원한 스승인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간사이자 경성제대 교수였던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는 지금의 '대구'라고 주장했다. 해양제국 백제가 왜(倭)로 가는 길을 몰라서 내륙 대구에 와서 묻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반론이 있자 탁순을 창원이라고 비정한 학자도 있었다. 모두 사료적 근거가 전혀 없는 '내 맘대로 골라 찍기' 역사학이다.

'일본서기'의 이 내용은 일본 열도 내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모를까 한반도 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은 0%다. 강대국 백제 임금이 철기생산 능력도 없는 야마토왜에게 조공을 바치고 싶어 안달했다는 이런 황당한 내용을 이 나라의 유수한 대학의 사학과 교수들이 사실로 믿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버젓이 설명으로 쓰는 것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일본서기' 신공 46년은 서기 246년인데 제멋대로 120년을 더해서 366년의 사건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가야본성'의 연표에는 369년에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이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았다고 썼는데 이는 더 심각하다. 한 세기 전 일본 제국주의는 서기 369년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해 '임나일본부'를 세웠으니, 일제가 한국을 점령하는 것은 침략이 아니라 과거사의 복원이라고 미화했는데 이를 그대로 써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야본성'은 서울과 부산박물관(4월 1일~5월 31일)을 거쳐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등지도 갈 예정이었지만 부산전시는 예정보다 늦은 5월 6일 개막해서 한 달도 못 채우고 부랴부랴 문을 막을 내렸고 일본 전시는 포기했다고 말했었다.

'가야본성' 전을 일본에서 개최하자 역사운동가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1인시위로 항의하고 있다..
'가야본성' 전을 일본에서 개최하자 역사운동가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1인시위로 항의하고 있다..

시민들의 비난이 쇄도하면서 사태가 확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카르텔은 포기를 모른다. 비난이 잠잠해지자 2022년 10월 4일~12월 11일까지 일본 지바현의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에서 그 수위를 조금 낮춰 전시를 강행했다. 보신을 중시하는 공무원들이 일본 극우파들에 자국사를 팔아먹는 매국행위를 거듭 자행할 때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것이지 국립중앙박물관 단독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고로 임나일본부를 선전한 반국가적 행태를 조사한다는 소식은 아직도 듣지 못했다. 이 나라가 정상국가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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