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12쪽)
테네시 윌리엄스에게 퓰리처상과 뉴욕 극비평가 상을 안기며 최고의 극작가 반열에 올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1947년 12월 3일 브로드웨이에서 엘리아 카잔의 연출로 초연한 이래 855회 상연을 기록했고, 비비안 리와 말론 브란도 주연의 동명 영화로 만들어져 블랑시 역을 맡은 비비안 리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걸작 희곡이다.
뉴올리언스시의 '극락'이라고 불리는 거리 모퉁이 2층 건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동생 스텔라를 찾아온 블랑시의 눈에 비친 경관 묘사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뉴올리언스가 가진 특징, 곧 재즈의 탄생지다운 자유분방함과 남부 특유의 끈적끈적한 기질과 퇴락한 이미지의 서정성. 또 창고에서 풍기는 바나나 향과 갈색 강물의 훈기를 느낄 수 있는 커피 향과 길모퉁이 술집에서 흑인 악사가 연주하는 '블루 피아노' 같은 것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희곡답게 블랑시가 도착하는 도입부터 배경 묘사가 치밀하다. 이를테면 졸라의 '테레즈 라캥'과 발자크 '고리오 영감'의 배경이 되는 거리를 설명하는 도입부와 흡사한데, 이런 남루한 환경의 세밀한 묘사(저택은 굳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위대한 개츠비'에서처럼 "40에이커가 넘는 잔디밭과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 정도면 충분하니까.)는 블랑시가 구원을 꿈꾸는 동력이면서 스탠리와의 대립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제가 된다.
이 작품이 시종 흥미진진한 건 블랑시와 스탠리를 이항대립으로 놓은 구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테네시 윌리엄스는 블랑시와 스텔라를 미시시피 벨 리브 출신의 품위와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설정하는 반면, 폴란드 이민자 스탠리 코왈스키는 동물적 욕구만 가득한 저열하고 천한 노동자로 그린다. 19세기 중반 뉴욕을 건설한 사람은 독일과 아일랜드계 이민자였다. 20세기 초반에는 남유럽과 동유럽, 이탈리아와 폴란드의 노련한 장인들이 마천루를 지었다. 스탠리 코왈스키도 그들 중 하나의 후손일 터.
귀족 정신과 남부문화를 고수하려는 블랑시의 몽상과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스탠리의 현실이라는 두 개의 가치관이 부딪힐 때마다 등장하는 '블루 피아노'와 섹슈얼리티. 그리하여 사라져간 남부의 영광에 집착할수록, 사랑스럽고 아람다워지려 애쓸수록, 블랑시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며 추해지는 이중모순에 빠진다. "당신의 사랑이 없다면, 이건 싸구려 행진! 당신의 사랑이 없다면, 이건 오락실에서 나오는 음악…."(108쪽) 블랑시에게 환상 없는 현실은 진창에 불과할 터였다.

조지아주 타라의 스칼렛 오하라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믿는 생명력 강한 남부여인이라면,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의 블랑시는 "언제나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블랑시는 남부의 퇴폐와 환락의 그림자를 최고 수준의 심리극으로 끌어올리며 자신을 산화한다. 꿈속을 걷는 블랑시와 현실에 함몰된 인간군상이 보여주는 시대의 자화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블랑시를 비난하고 조롱할 자격 있는 사람, 누구인가?
영화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尹, '부정선거 의혹' 제기 모스 탄 만남 불발… 특검 "접견금지"
李 대통령 "돈은 마귀, 절대 넘어가지마…난 치열히 관리" 예비공무원들에 조언
정동영 "북한은 우리의 '주적' 아닌 '위협'"
尹 강제구인 불발…특검 "수용실 나가기 거부, 내일 오후 재시도"
"소년 이재명, 성폭행 연루" 주장한 모스 탄, 경찰 수사 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