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코로나가 끝나면 가고 싶은 그곳] 미국 뉴욕…현대미술관·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미술관이든 밤거리든 조금은 자유로워도 돼

뉴욕 자유의 여신상
뉴욕 자유의 여신상

◆뉴욕 맨해턴 5번가

내게 최초로 각인된 뉴욕은 오드리 햅번이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던 티파니 매장이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에서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작된 것이어서 영화관이 아니라 1970년대 어느 날 흑백TV의 그 장면에 사로잡힌 그때부터 나는 뉴욕을 꿈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검은 선글라스와 드레스 그리고 목 긴 장갑을 낀 채 티파니 매장 앞에서 몽환적인 표정으로 크로와상을 베어 물던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꿈꾸듯 말했다. 나도 꼭 그곳에 가보고 싶어.

한때 그 브랜드에 열광했던 적도 있어 뉴욕 5번가에 들어설 때부터 나는 지도를 펴들고 호시탐탐 그 곳에 갈 틈만 찾았다. 하지만 일행에서 혼자 빠져나올 틈을 매의 눈을 가진 인솔자가 주질 않는다. 저기 모퉁이만 돌면 된다고 투덜대보아도 송곳도 들어가질 않는다.

원래 문방구였다던 티파니 본점 매장 4층에 티파니 블루박스 색상으로 카페를 열었다는데 하루 입장 대기 인원만 2천 명 이상이라고, 어쩔 수 없으니 이 안타까움을 풀기 위해서라도 코로나가 종식되면 뉴욕엘 다시 한 번 가야 할듯하다. 그러고 보니 영화와 명품으로 이어지는 이 얼마나 가공할 브랜드 비주얼라이제이션(Brand Visualization)인가.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

5번가와 6번가 사이 다른 모퉁이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유리 회전문을 툴툴대며 밀며 들어선다. 앗, 미술관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입구도 백화점 같았단 생각이 문득 든다. 역시 모던하다. 미국 특히 뉴욕 맨해튼의 근대와 현대를 아우른 미술관이라는 말이 이것 이구나 싶다. 1929년 대부호 존 D. 록펠러의 부인 애비와 그녀의 친구들이 세운 이곳에는 19세기 말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회화, 조각, 사진, 영화, 그래픽아트 작품 등 14만여 점을 소장한 말 그대로 근현대미술의 메카다.

1950년대 대구에서 근무한 미 공보관 맥타카트가 구입한 이중섭의 그림 3점도 여기 기증해 소장되어 있다는데 찾아보진 못했다. 지하 수장고 깊숙한 어디엔가 보관되어 있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6층을 오르내리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세잔의 '수영하는 사람',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본다. 티파니를 잊어버릴 만큼 행복하다.

로댕의 '발자크', 루소의 '잠자는 집시', 마티스의 '춤', 뒤샹의 '자전거 바퀴'를 지나 리히텐슈타인의 '공을 든 소녀', 폴록의 '하나, No.31, 1950', 워홀의 '금빛 마릴린 먼로', 리히터의 '999'를 지날 땐 작품들이 보석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연이어 쇠라, 달리, 클림트에 흠뻑 젖어 나온 스산한 2월의 뉴욕에 어둠이 내린다.

문득 나는 레너드 코헨이 왜 푸른 레인코트를 입은 연적에게 새벽녘 뉴욕에서 편지를 썼던가 궁금해 한다, 그는 시인이기도 했으니 이런 날씨의 이런 뉴욕에 살다보면 연적과도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겠단 이상한 생각도 하며 낮에 지나왔던 타임스퀘어를 가로질러 브로드웨이로 간다. 저녁은 쉑쉑버거로 때우고 브로드허스트 극장의 맘마미아를 보기로 일행들과 뉴욕식의 합의를 본 것이다. That's Okay! 뉴욕의 밤은 길고 기니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Met)은 압도적이다. 고대 로마 신전의 모습을 한 위압적인 외관은 전날 본 모마와 구겐하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미국관과 유럽관,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극동과 근동, 그리스와 로마,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의 아메리카, 뉴기니관 등 200만 점의 컬렉션을 소장한 5만 7천여 평의 미술관이 센트럴 파크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니 말이다.

조각과 회화는 물론 건축, 드로잉, 판화, 유리작품, 도자기, 직물, 금속세공품, 가구, 각 시대의 방들, 무기와 갑옷, 악기 등은 한 달을 관람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파리에서 루브르만 일주일 동안 다녔던 나는 우선 보고 싶은 작품들을 선별해둔 터라 재빨리 미술관을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벨리니와 티치아노, 할스, 와토와 샤르댕,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무엇보다 렘브란트와 페이메이르를 보기 위해 미술관 지도를 들고 그야말로 메뚜기처럼 이 방 저 방 풀쩍풀쩍 뛰어다녔다. 잠시 부끄러움도 느껴졌지만 알고 보면 이 미술관도 유럽의 문화예술에 대한 미국인들의 열등감 해소를 위해 세워진 곳 아니던가. 1660년 가난해지고 늙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진다. 정해진 시간 끝자락에 미술관을 나오니 눈발이 휘날린다. 춥다.

뉴욕
뉴욕

◆뉴욕의 밤은 깊어

뉴욕은 오페라 하우스에도 메트로폴리탄을 붙인다. 그 날 밤 그곳에는 일행만 들어가고 나는 클래식한 자켓과 붉은 모자를 구입한다. 말하자면 속물스럽게도 오페라를 보기보담 아트 샵에서 쇼핑을 하고, 뉴욕 밤거리를 걸으며 드라마 '섹스 앤드 시티'의 디저트 맛집 매그놀리아 베이커리(Magnolia Bakery)에 앉아 바나나 푸딩을 먹은 것이다.

링컨 동상이 세워진 길 맞은편 자연사박물관의 불이 환했던 것은 뉴욕 어린이들의 박물관 캠프가 열리는 날이란 뉴욕 친구의 설명, 오페라 하우스 바로 옆 밤공기에 휩싸인 건물이 줄리아드 스쿨이란 설명도 기억난다. 아, 그때 자켓과 함께 산 붉은 모자를 쿠바로 떠나면서 호텔 옷장에 두고 나와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니 우편으로 와 있던 일도 기억난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환락의 도시(Fun City)다. 가는 곳마다 모두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두 번쯤은 본 곳이다. 록펠러 센터, 트럼프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이스트 빌리지와 소호, 차이나타운, 리틀 이탤리와 할렘 등등, 그래서 주마간산식으로 보고 말 수밖에 없다. 한때 큰 사과(Big Apple)라고 미화되었다던 도시의 밤거리는 범죄에 노출되니 혼자서 다니지 말란 말을 끊임없이 듣는다.

뉴욕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다시 작품들을 원 없이 감상하고 월 스트리트 황소 동상 옆에 줄을 서서 '치즈'를 연발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스태튼 아일랜드 여객선을 타러 가는 길목에는 뉴욕에서 자주 본 시위를 하는 중국인들이 전단을 나눠준다. 영어와 중국어로 강한 어귀를 쓰고 톈안문이나 신장 위구르 때로는 파룬궁 사진이 실린 얇은 전단이다. 우리가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간다는 걸 알기 때문일 터다.

2001년 9·11 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현장에는 두 개의 쌍둥이 메모리얼 풀이 슬프게 자리하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다. 이 말은 핵폭발이나 대형 폭격, 폭발사고가 발생한 지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처럼 9·11 테러를 화면으로 보며 전 세계인들은 이전 세계와의 단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겪고 나면 슬프고 아이러니하지만 사람들은 강해진다. '힘!'이란 짧고 힘이 되는 카톡을 보내오는 친구가 있는데, 나도 속으로 그곳에서 주먹을 쥐고 되뇌었다.힘!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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