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명의 교차로 실크로드]키르기스스탄과 천산산맥

천혜의 관광자원 보유한 청정 산악국가

천산산맥에는 일 년 내내 순백으로 빛나는 만년설이 덮여있어 대자연의 교향악이 울리는 듯하다. 수도 비쉬켁의 높은 건물에서 이 장관을 볼 수 있다.
천산산맥에는 일 년 내내 순백으로 빛나는 만년설이 덮여있어 대자연의 교향악이 울리는 듯하다. 수도 비쉬켁의 높은 건물에서 이 장관을 볼 수 있다.

광활한 사막과 스텝지역을 가로지르며 깊은 협곡, 빙하, 순백의 설원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 등 4개국에 걸쳐있는 거대한 천산산맥이다. 일 년 내내 녹지 않는 만년설로 덮여있고 남쪽으로는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이 이어져 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린다.

동서의 길이는 약 2,500km, 남북의 너비는 약 300km이다. 평균 해발은 약 5,000m이다. 최고봉은 키르기스스탄과 중국 국경에 있는 해발 7,435m의 포베다산(승리봉)이다. 주요 봉우리로 한텡그리봉(6,995m), 보거다봉(博格達峰,5,445m)이 있으며, 3,000~4,000m급의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약 90%가 천산산맥과 그 지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크로드의 길 위에서 바라보는 천산산맥. 그 옛날, 좁은 비포장 도로였을 이 길을 현장법사도 고선지 장군도 지나갔을 것이다.
실크로드의 길 위에서 바라보는 천산산맥. 그 옛날, 좁은 비포장 도로였을 이 길을 현장법사도 고선지 장군도 지나갔을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은 먼저 알라알차 국립자연공원을 찾으면서 천산산맥의 품속으로 들어가 본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로부터 불과 30킬로 정도 떨어진 국립자연공원으로 향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 양 떼를 모는 목동들의 모습을 보면 이곳에서는 시간을 비롯한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주차장에서 30분 정도만 걸으면 능선 뒷편에 은빛으로 빛나는 설산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때마침 신비스러운 운무가 피어올라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코발트빛 하늘과 새하얀 산봉우리를 보면 별천지에 온 느낌이 든다. 협곡 건너편에는 예쁜 색상으로 지붕을 장식한 산장들이 휴양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가진 곳이다. 앞쪽에 흐르는 계류에는 만년설이 녹은 물이 콸콸 흐르고 있다. 21세기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는 청정 산악국가 키르키스스탄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관광자원들을 간직하고 있다.

넓게 펼쳐진 벌판 뒤로 천산산맥이 달리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약 90%가 천산산맥과 그 지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넓게 펼쳐진 벌판 뒤로 천산산맥이 달리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약 90%가 천산산맥과 그 지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나라의 정식명칭인 키르기스스탄은 '키르기스인의 나라' 또는 땅이라는 뜻이다. 산악국이라 불릴 정도로 국토의 40%가 해발 3000m를 넘는다. 사막과 건조지역이 많은 중앙아시아에서 키르키스스탄은 고지대에 위치해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깨끗한 물이 많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물이 부족한 이웃 자원부국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 물을 수출하기도 한다.

키르키스스탄 지역의 천산산맥에는 약 1100종류의 식물이 있다고 하며 동물로는 여우, 늑대, 토끼, 오소리, 산사슴, 독수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겨울이면 산정상 부근에 희귀한 눈표범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곳은 환상의 동물 눈표범이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 그 짐승은 무리 지어 사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사로잡기가 어려우며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포식자로 알려져 있다.

자유롭고, 영리하고, 신중하고,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야수이다. 눈부신 순백의 모피 때문에 눈표범은 완전 멸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키르기스인들은 그들 부족의 하나가 눈표범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말고삐나 안장에서 풀려나 방목되고 있는 키르키스스탄의 말들. 천산산맥의 산록에서 키워진 말은 옛날부터 중국에서 수요가 있어 비단처럼 가치가 컸었다.
말고삐나 안장에서 풀려나 방목되고 있는 키르키스스탄의 말들. 천산산맥의 산록에서 키워진 말은 옛날부터 중국에서 수요가 있어 비단처럼 가치가 컸었다.

◆키르기즈인에게 말은 가장 친한 친구

국립자연공원 입구에는 큰뿔양의 형체가 조각품으로 서 있다. 나선형으로 굽은 무거운 뿔 때문에 시선을 끈다. 도시에서 멀지 않는 곳인데 갑자기 고원 분위기이다. 기온도 전혀 달라 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에 손을 담궈 보니 매우 차갑다. 냇가에도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있다. 유독 눈에 띄는 보라색 꽃들을 발견하고 무슨 꽃인지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초롱꽃과로 분류되는 로벨리아 꽃이다.

원산지는 남아프리카라는데 실크로드 루트 위에 있는 이곳에서 발견되니 이제는 전 세계로 분포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수많은 헝겊 조각들이 가지에 묶여있는 특이한 나무가 서 있다. 산악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민간신앙의 형태라고 한다. 바이칼호 부근에서 본 샤머니즘의 표지가 이슬람국가이지만 이곳 천산산맥 입구에 아직도 남아 있다.

등산로 옆 나무 그늘에 잘생긴 말들이 보인다. 초보자도 이용 가능한 승마 트레킹코스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말은 키르기스스탄의 유목문화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키르기스스탄의 민속문학은 사람과 말의 조화로운 삶을 묘사하고 있다. 키르기즈 민족과 말의 깊은 유대관계는 유목민 전통의 말 경기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키르기즈인들은 말 한 마리 한 마리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긴다.

키르기즈 말은 아주 특별하다. 그 말은 가볍게 달리고, 튼튼하고, 간소하고, 그리고 산악지역에 잘 적응되어 있다. 키르기즈 말은 옛날부터 중국에서 큰 수요가 있었고 비단과 비슷하게 대단히 가치가 컸었다. 이곳의 말들은 한혈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대개는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달리는 말', 즉 말의 털 색깔 때문에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에 1,000리를 달릴 정도로 지구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 한문학 작품에서 한혈마는 명마의 대명사로 사용된다.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적토마도 이 한혈마의 일종으로 추측한다. 키르기즈인들은 실크로드의 길을 통해 모피, 사향, 자작나무 등을 팔았다. 그들은 또 한나라 때부터 중국에 말을 가져갔다. 당시 기마부대는 무적의 첨단무기였다. 수천 년이나 계속돼 온 대실크로드의 교역은 나라와 문명의 연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천산산맥 지류에 있는 알라알차 국립자연공원. 정상부분을 망원렌즈로 촬영할 때, 때마침 운무가 피어올라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천산산맥 지류에 있는 알라알차 국립자연공원. 정상부분을 망원렌즈로 촬영할 때, 때마침 운무가 피어올라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천국의 산 '칸텡그리'

키르기즈 사람들에게 산의 의미는 매우 크다. 산은 단순한 산 그 이상의 것이다. 산은 조상의 높은 정신을 상징한다. 그것은 자유, 지혜, 그리고 나아가, 길은 오르기 어렵고 내려가기는 쉽다는 것과 같은 인생철학을 얻기 위한 노력을 상징한다. 산 정상에 서면 하늘에 있는 별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산이 태양에게 직접 말을 거는 곳이고 밤이면 별들이 말을 걸어오는 곳이다.

산 이름 '칸텡그리'는 천국의 산이라는 뜻이다. 산속 공기는 신선하다. 하늘은 더 가까이 있고, 별은 더 밝게 빛난다. 키르기스스탄이 산의 나라라고 불리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직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지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태어난다고 믿는다. 산이나 그 기슭에 사는 키르기즈인들은 많은 전설, 신화, 그리고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다.

많은 헝겊 조각들이 가지에 묶여있는 나무가 등산로 옆에 서 있다. 이슬람국가이지만 산악지역에서 보이는 민간신앙의 형태로 남아 있다.
많은 헝겊 조각들이 가지에 묶여있는 나무가 등산로 옆에 서 있다. 이슬람국가이지만 산악지역에서 보이는 민간신앙의 형태로 남아 있다.

냇가에 있는 여러 꽃들 가운데 초롱꽃과로 분류되는 보라색의
냇가에 있는 여러 꽃들 가운데 초롱꽃과로 분류되는 보라색의 '로벨리아' 꽃이 피어있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된 투르크권 문화예술은 민속신앙, 솟대 문화, 씨름 등 언어부터 놀이문화까지 우리 한민족과도 일정 부분 유사성과 역사적 관계를 갖고 있다. 키르기스인은 유목민족에 관한 역사 기록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나, 단 한 번도 유목제국을 건설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타났다 사라진 수 많은 민족 들과 달리 천산산맥 옆에 터를 잡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오늘날까지 그 이름으로 당당하게 자유민주국가를 세우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가 '네 영혼이 고독하거든 산으로 가라'했던 말에 공감한다. 키르키스스탄은 오염되지 않은 산악국가, 그래서 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린다. 실크로드의 흔적을 찾아 나선 길 위에서 청정한 천산산맥을 만나 새로운 길을 여는 다짐을 한다. 빛나는 만년설에 뒤덮혀 있는 고산준령들이 대자연의 교향악을 울리는 듯하다.

박순국 언론인
박순국 언론인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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